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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얼굴 까만 백인/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수

[열린세상] 얼굴 까만 백인/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수

입력 2013-01-05 00:00
업데이트 2013-01-0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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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여야 합의로 예산안 확정,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예산 2조 4000억원 반영, 국정 운영에 대한 높은 기대 등에서 보듯 정치권과 국민이 새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해 서로 마음을 열고 힘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지역과 세대, 성별로 골고루 등용해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박 당선인의 약속 실현에 대해서는 인수위원 임명부터 우려가 그치지 않고 있다. 미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얼굴 까만 백인’을 내세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핵심인 것 같다.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수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수
얼굴 까만 백인이란 과거 미국 공화당 정부가 흑인을 배려한다며 고위직에 임명한 흑인들을 학계와 사회적 약자들이 비꼰 표현이다. 그들은 얼굴만 검을 뿐 흑인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는 성장 배경을 갖고 있지 않았다. 기본 철학도 공화당 사람들과 유사하며, 그동안의 사회활동 내용 또한 흑인의 입장에서 불평등한 상황을 대변해 준 적이 없었던 인물로, 실은 백인과 같다는 의미다. 야당 배경을 가졌던 특정 지역 인사를 기용한다며 이미 자기 쪽으로 마음을 바꾼 사람을 임명하는 것은 얼굴 까만 백인을 임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한 것처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때 대통합의 목적은 달성될 수 있다.

인사를 할 때 다양한 집단을 배려하는 목적은 특정 집단의 소외감을 털어 주고 그 집단의 이익을 어느 정도 반영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대통합과 함께 이런 열린 인사를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더 있다. 같은 정당, 혹은 학연·지연·혈연에 따른 인사를 할 경우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유능한 사람이 배제돼 더 유능한 사람이 중요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그 결과 사회 전체가 손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런 문제를 간파하고 후계자를 정한 요(堯)임금은 좋은 사례다. 요임금은 아들 단주가 어리석어 천하를 이어받기엔 모자란다는 점을 잘 알았다. 그래서 제위를 순(舜)에게 넘겨주려고 했다. 그는 아들에게 양위해야 한다고 주청하는 신하들에게 “한 사람을 이롭게 하고자 천하가 손해를 볼 수는 없다”(終不以病天下而利一人)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지연·혈연·학연에 의한 인사는 한 사람과 집단을 이롭게 하기 위해 나라에 해를 끼치는 행위다. 이 논리를 확장시켜 보면 대통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역량이 부족한 사람을 중용하면 개인과 해당 집단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국가엔 해가 될 것이다.

다양한 배경과 세계관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유사한 세계관과 철학을 가지고 유사하게 사고하는 사람끼리 모여 정책을 논할 때 나타나는 집단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모여 있으면 반대 입장을 포함한 다양한 관점을 반영하기 어려워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기 십상이다. 다른 예이기는 하지만, 자연계가 우성뿐만 아니라 열성도 생존시켜 종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에서도 배울 필요가 있다.

고른 인재 등용이 가능하려면 상대방이 마음을 열고 동참할 수 있도록 사전에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감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과거와 상황이 달라졌으므로 이제는 해당 집단으로부터 3배수 정도의 추천을 받는 열린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나아가 열린 임명이 성공하려면 당연히 상대방 또한 열린 자세를 지녀야 한다. 정부 안에 들어가서도 자기가 속한 집단의 가치관과 신념만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 역할만 한다면 그 집단은 국민들로부터 다시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자기와 경쟁했던 오바마의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맡아 임무를 수행하면서 내내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의 자리를 고수했다. 얼굴 까만 백인을 임명해 놓고 그 성과를 논한다면 임명권자의 책임일 것이고, 각계각층 대표 자격으로 입각한 사람이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해 비판을 받는다면 그를 추천한 집단의 책임일 것이다. 인수위원회는 진정성 있게 인사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관련 집단은 신뢰와 소명 의식을 가지고 최고의 인사가 중용될 수 있게 도와 성공적인 국정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서로 힘을 모으길 기대해 본다.

2013-01-0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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