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미래창조과학, 미래창조문화/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열린세상] 미래창조과학, 미래창조문화/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입력 2013-04-18 00:00
수정 2013-04-18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이미지 확대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창조경제의 개념을 두고 논의가 분분하다. 진통 끝에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창조경제를 이끌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되었다. 이후 모든 국가 정책에는 ‘창조’란 용어가 수식어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일찍이 없던 부처가 탄생하자 얼리 어댑터 기질이 강한 우리 국민들은 새 부처의 역할과 영향에 대해 숱한 기대와 해석을 쏟아냈다. 사람들은 미래창조과학이라는 전대미문의 언어 조립으로 인해 미래는 과학으로 창조된다는 암시를 받게 되었다. 미래부 차관이 “창조경제의 씨앗은 과학기술에서 나오는 상상력”이라 정의했고 “정보통신기술(ICT)이 창조경제의 비옥한 토양이 될 것”이라 했다. 그러한 멋진 표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과 경제를 바꾼다’는 식의 많이 들어본 듯한 설명 방식에 별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세기의 문지방을 넘어오는 동안에도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개발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 왔다. 올해 국가예산 342조원 중 교육과학기술부 예산은 전체 예산의 16%를 상회하는 반면,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1.1%에 불과하다. 이러한 극심한 불균형은 역대 보수정권 진보정권 할 것 없이 산업의 시대에도, 문화의 세기에도 요지부동의 구도가 되어 왔다. 척박한 토양에서 좋은 과일을 얻을 수 없듯이 그간 예술과 인문을 도외시해 온 우리 사회는 성장동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때 첨단기술 기반의 제품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일본이 구글, 애플에 무릎을 꿇고 침체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창조적 혁신보다는 그들이 보유한 기술을 개선하는 방식을 통해 극한의 성능에 도달하고자 하는 선형적 개발모델을 고수해 왔다. 그러한 접근 태도가 미래에 대한 상상적 도약을 저해했고, 스스로 시대 변화의 속도에 둔감해졌다.

과학기술은 물질적으로 풍요의 시대를 열었지만, 위대한 과학적 진보는 기술 자체의 진화이기보다 사물과 현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하는 창의적 사고를 통해 가능했다.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과 인문학적 사유는 창의성의 원천이다. 창조경제를 설명할 때 대표 사례로 등장하는 해리포터의 성공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상상력이 원료가 되고, 미디어 기술이 수단이 되어 열매를 거둔 것이다. 창조경제 실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모든 국면에서 창조적으로 발상하는 개개인과 그들의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는 유연한 사회 환경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첫째, 창조의 토양인 문화와 창조의 주체인 인간에게 투자하는 것이고 둘째, 새로움을 길어 올리는 힘인 문화와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힘인 과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다.

영국 문화미디어부(DCMS)의 보고서 ‘창조적 영국: 새로운 경제를 위한 새로운 재능’에 따르면 ‘창조적 영국’을 위한 최우선 전략은 개인의 창의성을 진작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이를 조직적으로 관리하여 개인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일이며, 세 번째 전략은 기술개발을 위한 혁신적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범정부 차원의 ‘창조산업 태스크포스’를 구성했고, 문화미디어부를 주무부서로 각 부처 간 유기적인 업무 분담과 협력을 유도했다. 우리에겐 신생 미래창조과학부가 있지만, 현재로서는 과거의 교육과학기술부·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지식경제부의 일부 기능이 결합돼 이식된 나무들처럼 몸살을 앓고 있고, 문체부와는 업무 분할을 두고 불협화음이 들린다.

과학과 문화의 벽을 허물고 통섭의 지식을 추구하는 에지(Edge)의 발행인 존 브록만은 문학, 예술, 과학기술을 포괄하는 통합적 지식세계인 ‘제3의 문화’가 미래사회를 이끌 것이라고 했다. 과학기술의 토양에는 문예정신이 있고, 그것을 작동케 하고 시장으로 연결하는 데는 디자인이라는 수단이 있다. 역사적으로 문화적 축적이 취약한 곳에서 과학의 진보가 있었던 예를 찾아볼 수 없고, 과학강국이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배후에는 수준 높은 창조적 집단이 포진되어 디자인을 매개로 혁신을 이루었다. 미래창조는 문화력에 과학기술력이 연합할 때 승수효과를 얻을 수 있다.

2013-04-18 30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투표
트럼프 당선...한국에는 득 혹은 실 ?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뒤엎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 됐습니다. 트럼프의 당선이 한국에게 득이 될 것인지 실이 될 것인지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득이 많다
실이 많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