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문 고려대 연구교수
비슷한 시기에 찾아간 판문점은 판이했다. 군사분계선 건너 마주 보는 남북한 초병의 표정 없는 얼굴엔 긴장감이 돌았다. 반세기 이상 서로 겨누던 휴전선 일대 남북의 총구와 야포는 줄어든 게 없고 군사시설도 그대로였다. 난데없는 북한의 포격으로 무고한 국민들만 다치고 죽었다. 정상회담도 중단됐다. 수십만 병력이 대치하고 있고 관광, 투자, 체육 및 학술 교류는 한 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답보 상태다. 심지어 이산가족의 생사마저 알 수 없다. 지난해 개성공단이 창졸간에 폐쇄돼 그나마 있던 숨구멍마저 막혔다. 합리성을 결한 단기적 결정, 아집과 독선으로 이산가족 상봉은커녕 서신 교환 하나 제도화하지 못하는 우리다. 중국과 대만엔 양안 관계의 창구 역할을 하는 기구가 운용되지만 우리는 지난 세기부터 오가던 그 많은 회담 중에 정례화된 게 하나 없다. 한쪽은 여전히 대남 적화통일 방침을 포기하지 않고 있고, 다른 한쪽은 지난 10년간 힘으로 상대를 궤멸해 흡수 통일하겠다며 자기 허물은 눈 감은 채 압박만 하다 허송세월했다.
한민족이 자랑스럽고 위대하다고? 확연히 대비되는 중국과 우리의 분단 관리를 보면 자랑은커녕 자괴감이 든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는 과거 서로 총부리를 겨눴지만, 한때는 동료, 친구, 사제지간, 부모형제였다는 인식이 남아 있다. 저우언라이는 장제스의 제자였고, 덩샤오핑과 장징궈(蔣經國)는 모스크바 유학 동기였다. 최고위층에서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숱한 인연과 ‘관시’들이 존재하고, 그것이 충돌 시에도 양안 관계의 판은 깨지 않는 힘으로 작동된다. 2015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공 영수회담 때 시진핑 주석은 대만의 현실, 양안의 의견과 건의를, 대만 동포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겠다(3개 충분론)면서 형식적인 통일보다 마음과 혼을 합치(心靈契合)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왜 우리는 이런 여유와 역지사지를 볼 수 없는가? 중국 민족이 중화주의를 매개로 통합의 결을 다듬어 갈 때 우리는 아직도 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서로를 철천지원수로 보는 적대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민족의 통일정책은 상대를 무시하고 자신만 옳다는 아집과 성과주의에 기반을 둔다. 어째서 동일한 냉전의 유산인 분단을 관리하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중국과 이다지도 다른가. 통일에 관한 한 나는 한민족을 결코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함은 거리가 멀다. 분단을 후세대에 물려줄 걸 생각하면 외려 부끄럽고 죄스럽기까지 하다. 대국적, 대승적 견지의 민족의식과 역지사지의 공유가 절실하다. “통일 상태가 오래가면 필히 분열되고, 오래 분열하면 필히 합치게 된다”(合久必分, 分久必合)는 중국인의 역사 의식을 본받을 일이다.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유연성도 부족하다. 남과 북이 각기 장단점이 있는 체제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한다. 이번에 남측이 위기 관리 차원에서 먼저 자신을 낮춰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을 제의했다. 이제 북측에서 인민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통 크게 화답할 차례다.
2017-07-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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