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에 눈먼 서방이 키운 ‘괴물’ 카다피

국익에 눈먼 서방이 키운 ‘괴물’ 카다피

입력 2011-02-23 00:00
수정 2011-02-2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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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서방의 위선을 드러낸 대표 사례”

 ”영국은 독재자 카다피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춰왔다.”

민주화 시위대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국제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가운데 서방국가들의 ‘대(對) 리비아 외교’가 새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리비아를 ‘범죄국가’로 규정하던 미국과 영국 등이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목적에 따라 외교기조를 선회한 것이 카다피라는 ‘괴물’을 키웠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희생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2일(현지시각) 토니 블레어 전 총리, 피터 만델슨 경, 고든 브라운 전 총리 등을 지목하며 “이들이 부끄러움을 안다면 피에 물든 리비아 사태를 보고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과거 노동당을 이끌었던 이들 ‘3인방’이 카다피 국가원수 일가와 비겁한 거래를 한 것은 노동당뿐만 아니라 영국의 명성에 흠집을 낸 것이라고 꼬집으며, 리비아와 영국의 ‘오랜 관계’를 소개했다.

 현대사에서 영국과 리비아의 인연은 ‘플레처 사건’과 ‘팬암기 폭파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레처 사건은 1984년 영국 경찰 이본 플레처가 런던 주재 리비아 대사관 앞에서 근무하다 반(反) 카다피 시위세력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고이며, 팬암기 사건은 1988년 런던 히드로공항을 출발해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팬암항공 소속 보잉747기가 리비아 정보요원의 테러로 폭발해 270명이 숨진 참사다.

 그러나 2003년 카다피 국가원수가 화생방무기 확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상황은 급반전했으며, 영국은 리비아를 국제사회의 품속으로 끌어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제 블레어 전 총리는 2004년 카다피 국가원수와 만난 뒤 “과거 테러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세상은 변한다”면서 리비아와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해 ‘아픈 과거’를 역사 속으로 묻었다.

 이런 기조는 뒤에도 이어져 브라운 전 총리 재임 시절에는 영국 특수공수부대(SAS)가 리비아 특수군을 훈련시켰고, 만델슨 기업혁신개발부 장관의 경우 지난해 노동당 총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할 때 카다피의 후계자로 알려져 있는 아들 사이프 알-이슬람이 아쉬움을 표시할 정도로 리비아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영국 정부는 이후 리비아로부터 영국산 미사일 및 방공시스템 구매와 석유기업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의 리비아 천연가스 탐사권 확보 등을 화해의 ‘보너스’로 얻어내기도 했다.

 영국은 인권감시단체인 ‘프리덤 하우스’가 리비아를 최악의 인권국가라고 평가한 데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최루가스, 시위 진압용 무기, 대공미사일, 레이저 측정계 등의 리비아 수출까지 허가해 이들 장비가 이번 폭력 진압에 이용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낳고 있다.

 중동전문가인 필립 맥크럼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서방의 위선을 드러낸 정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카다피”라며 “서방은 기름을 얻기 위해 카다피의 부활을 위해 온 힘을 쏟았고, 결국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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