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스 집에 산다’ 쓰려다 실수로 ‘테러리스트 집’…교사가 신고
“10살 아이가 철자를 실수로 틀렸을 뿐인데….”영국에서 10세 무슬림 소년이 학교 작문 시간에 맞춤법을 잘못 썼다가 교사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 ‘과잉 대응’ 논란이 일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과 일간지 가디언 등이 20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영국 북서부 랭커셔주(州)의 애크링턴에 사는 10세 초등학생 소년이 지난해 말 학교 영어 수업시간에 쓴 작문이었다.
무슬림 가정 출신의 이 소년이 제출한 글 가운데 ‘나는 테러리스트 집에 산다’(I live in terrorist house)라는 문장이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원래 ‘테라스 집’(terraced house·비슷한 모양의 집이 벽을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으로 영국의 보편적 주거 형태)에 산다고 쓰려던 것이었지만, 교사는 이를 실수로 생각하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교사의 신고는 지난해부터 시행된 교내 테러 방지 관련법에 따른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테러 방지 프로그램인 ‘프리벤트’(Prevent·예방)의 일환으로 지난해 7월부터 대학교수와 각급 학교·보육시설 교사들에게 극단주의 조짐을 보이거나 테러 관련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보안당국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교사의 신고로 결국 이 소년은 지난달 7일 경찰의 신문을 받았고, 당국은 소년의 집을 수색해 가족이 사용하는 노트북 컴퓨터까지 압수해 조사했다.
이 사건은 소년의 친척이 BBC에 제보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친척은 소년이 경찰 조사를 받은 뒤 글쓰기를 무서워하고 있다면서 “30세 남자라면 몰라도 어린 아이의 글을 가지고 그런(신고를 한)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교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맞춤법 문제라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새 테러방지 프로그램이 교사들의 과잉 대응을 부추긴다고 주장해온 측에서는 이번 사건에서도 담당 교사가 법을 어길 것을 걱정해 상식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영국 내 최대 무슬림 단체인 무슬림위원회(MCB)의 미크다드 베르시 사무무총장은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수십 건 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일은 ‘프리벤트’가 확대 강화되면서부터 예상됐던 결과”라며 “이 테러방지 프로그램은 개인의 일상을 보통 학생의 생활이 아니라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행동으로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시리아로 건너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등에 가입한 자국민이 8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무슬림 젊은이들이 극단주의에 물들지 않게 하려는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무슬림 이민자 여성들에게 영어시험을 통화하지 못할 경우 불이익을 주거나 여성의 몸 전체를 가리는 무슬림 복장 부르카를 각급 학교에서 금지할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면서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라는 반발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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