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정상회담 중 절반 ‘독대’
쿠릴 4개섬 평화협정 체결 논의오늘 도쿄로 이동해 두번째 회담
공동경제활동 합의문 발표 예정
일본과 러시아의 두 정상은 15일 야마구치현 나가토시(市)에서 통역만을 대동한 단독 회담을 1시간 35분간 가졌다. 이날 3시간 동안의 정상회담 가운데 절반 넘게 단독 회담을 한 셈이다.
나가토시의 한 온천 료칸(일본 전통식 숙소)에서 가진 이날 회담에서 양측은 쿠릴열도 남부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의 귀속 및 평화협정 체결, 극동 러시아 지역에 대한 일본의 투자 등 8개 경제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중단된 양국 간 외교·국방장관(2+2) 회의 재개 필요성의 대해 인식을 함께했다.
아베 총리는 회담 직후 “북방영토(쿠릴 남부 4개섬)에서 일·러 양국의 특별한 제도 아래에서의 공동 경제 활동, (북방영토의) 원주민들의 자유 방문, 평화 조약 문제 등을 중심으로 솔직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벌였다”고 밝혔다.
러시아 크렘린 측은 공동경제활동의 발표문에 대한 합의에 도달해 내일 도쿄에서 열리는 후속 정상회담에서 공동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측은 공동경제활동은 러시아의 법률 아래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또 “매우 좋은 분위기에서 회담을 진행했다”면서 “단독 정상회담에서 양국 문제 및 국제적인 과제에 대해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의 중요성을 논의했으며, 일·러 양국의 협력을 통해 현안을 해결할 수 있음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북방영토) 원주민들이 전해준 편지를 푸틴 대통령에게 건넸으며 러시아어로 적힌 편지에 대해서는 푸틴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읽어 줬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평균 연령이 81세로 이제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회담을 가졌으며 회담 결과에 대해서는 내일 기자회견에서 보고하겠다”고 말해 북방영토를 고향으로 둔 일본인 원주민들의 자유 왕래가 상당히 해결됐음을 시사했다.
아베 총리는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한 일본의 대대적인 투자 등을 약속한 상황에서 푸틴의 감정에 호소하면서, 북방영토 문제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 셈이다.
이날 두 정상은 저녁 9시 무렵 3시간 동안의 회담을 마친 뒤 9시 30분이 넘어서야 만찬을 하면서 논의를 이어나갔다고 NHK 등이 전했다. 단독 정상회담이 이례적으로 길어진 것은 개인적 친분을 앞세운 아베 총리가 푸틴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 탓이었다.
러시아가 실효지배 중인 북방영토를 일본에 귀속시킬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 열린 이번 회담은 푸틴을 설득하기 위해 아베가 공을 들이는 자리라는 성격이 강했다. 나가토는 아베 총리의 본적과 국회 지역구인 정신적, 정치적 고향으로 우호적 분위기를 강조하려는 정성과 노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푸틴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푸틴이 예정보다 3시간 가까이 늦은 오후 4시 50분쯤 전용기 편으로 야마구치 우베공항에 도착해 정상회담 시간이 늦어지기도 했다. 일본 언론은 “회담 기선을 잡으려고 일부러 늦은 것”이란 해석을 내놓았지만 러시아 측은 시리아 문제가 복잡해져 이에 대한 협의를 하느라 늦었다고 해명했다.
아베 총리는 푸틴보다 4시간가량 이른 이날 오후 1시쯤 도착해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의 묘소에 성묘하는 등 회담을 준비했다. 두 정상은 이번이 16번째 정상회담일 정도로 오랫동안 현안을 둘러싸고 협의를 진행해 왔다. 그만큼 두 정상은 개인적인 친분이 두텁기로 유명하다.
경협 성과를 먼저 보여 달라는 러시아에 일본은 에너지 개발, 극동지역의 산업 진흥 및 인프라 투자 등 8개항의 경협 방안을 상당히 제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릴 4개 섬 중 남단의 시코탄과 하보마이를 조기에 돌려받기 위한 선투자인 셈이다.
푸틴은 전통 료칸에서 일본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두 정상은 16일 도쿄로 이동해 오찬을 겸한 정상회담과 문서 교환식을 갖는다. 15일 논의된 경협 및 북방영토에서의 공동 경제활동 등에 관련한 협의를 마무리하고 관련 문서를 교환할 예정이다. 또 게이단렌 주최 일·러 비즈니스 대화에도 참석한다. 유도 유단자인 푸틴 대통령은 2000년에 이어 이번에도 유도의 발상지라는 도쿄 고도칸을 찾은 뒤 귀국한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2016-12-16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