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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예술가 고흐는 천문학에도 조예 깊었다

천재 예술가 고흐는 천문학에도 조예 깊었다

입력 2013-01-05 00:00
업데이트 2013-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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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명화】이소영 지음/모요사 펴냄

썰렁 농담 하나. 예술가는 모두 할망구다. ‘영감’이 있을 때만 일해서다. 예술혼에 불타오르는 고귀한 천재들 얘기, 지칠 법도 하다. 그래서 ‘필’받은 천재 예술가를 부정하는 ‘실험실의 명화’(이소영 지음, 모요사 펴냄)가 흥미로운지도 모르겠다. 도입부에서 이미 19세기 영국 화가 조지프 터너의 눈과 1995년부터 목성을 관측한 우주선 갈릴레오호의 렌즈를 ‘풍경화가’라는 기준으로 비교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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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가 1306년 완성한 이탈리아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 중 ‘동방박사의 경배’. 인물들 위에 1301년 관찰한 핼리혜성을 또렷하게 그려넣었다. 모요사 제공
조토가 1306년 완성한 이탈리아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 중 ‘동방박사의 경배’. 인물들 위에 1301년 관찰한 핼리혜성을 또렷하게 그려넣었다.
모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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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고흐의 1889년작 ‘별이 빛나는 밤’에서 보이는 소용돌이치는 하늘은, 그의 독창적 기법이라기보다 당대 천문학에서 흔히 쓰이던 이미지였다.  모요사 제공
조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고흐의 1889년작 ‘별이 빛나는 밤’에서 보이는 소용돌이치는 하늘은, 그의 독창적 기법이라기보다 당대 천문학에서 흔히 쓰이던 이미지였다.
모요사 제공


이런 식이다. 광기어린 천재의 대표선수 고흐를 두고 측두엽 뇌전증 환자였고 당대 천문학 지식을 충분히 연구했다고 지적한다. 측두엽 뇌전증은 뇌가 오버해서 주변 자극을 더 크고 활발하게 받아들인다.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면 왠지 그럴 것도 같다. 고흐의 천문학 지식도 상당했다. 17세기 플랑드르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두고서는 먹지로 대상을 베끼듯 그림을 베껴서 그렸을 것이란 추측을 소개해 뒀다. ‘천지창조’ 등의 그림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시스티나대성당의 천장화는 미켈란젤로의 해부학 강의였단다. 그러니까 그 천장에 뇌와 장기와 등뼈가 가득했다는 얘기다. 영국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은 거의 기상학자 대접을 받는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는 2004년 캐나다에서 발견된 ‘틸타알릭’ 화석을 떠올리는 식이다.

사실 이런 얘기들은 좀 거북하다. 모처럼 우아와 교양 한번 떨어보려는데 재 뿌리는 것 같아서다. 그럼에도 왜 이런 얘기를 할까. “과학의 출발이 그러한 것처럼 예술의 출발도 관찰”이라 믿기 때문이다.

과학과 예술은 관찰에서 태어난 형제자매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책에서는 갈릴레오와 카할(1906년 노벨생의학상 수상자)처럼 뛰어난 과학자들이 남긴 아름다운 드로잉도 만날 수 있다.

이 얘길 듣다 보면 소설가 김연수가 떠오른다. 김연수는 제일 듣기 싫은 말로 “소설 쓰고 있네”를 꼽았다. 어떤 장면, 심리, 상태를 문장으로 묘사하는 건 집요한 관찰의 결과물인데 제 마음대로 지어내면 된다고 착각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저자의 주장을 재수없게 여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디서 “예술하고 있네” 비아냥 소리가 들린다면, 충분히 함께 흥분해줄 것 같으니까. 소재가 딱히 새로운 건 아닌데, 주물럭대며 비빈 손맛이 좋다. 1만 68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2013-01-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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