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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밴 똥칠이가 사라졌어요” 재개발 산동네 아이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새끼 밴 똥칠이가 사라졌어요” 재개발 산동네 아이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입력 2013-01-05 00:00
업데이트 2013-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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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칠이 실종사건】 박현숙 지음/샘터 펴냄

교실 앞 칠판에 붙어 있는 서울 지도. 교수는 한 사람씩 학생을 불러내 자신이 사는 동네를 표시하고 학교에서 동네까지 오가는 길을 지도 위에 그리게 한다. 또 동네를 돌아보며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속살을 들여다보기를 주문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애정을 갖고 살펴보는 것이 바로 건축학개론”이라는 설명과 함께.

지난해 화제를 모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현실 속 서울은 골목의 주인을 몰아내고 고층 아파트와 대형 쇼핑몰을 불러들였다. 골목마다 이야기가 넘쳐나던 가난한 이웃들은 도시의 외곽으로 쫓겨났다.

동화 ‘똥칠이 실종사건’(샘터 펴냄)은 이 같은 서울의 욕심쟁이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박현숙 작가와 이제 화백은 재개발 구역 산동네인 ‘도깨비 마을’에 얽힌 가슴 따듯한 아이들의 성장기를 담아냈다. 이 화백은 어린 시절 살던 서울 성동구 금호동 산동네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렸다.

팔을 쭉 뻗으면 하늘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도깨비 마을은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터를 잡고, 아빠 엄마가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난 곳이다. 어느새 단단한 마을 계단과 벽에 흠집과 구멍이 생겼고 낡은 동네가 됐다.

초등학교 3학년인 봉기와 송이, 명칠이는 이곳에서 함께 자랐지만 뿔뿔이 흩어질 운명에 놓였다. 앞서 이사를 떠나는 명칠이는 봉기와 송이에게 새끼를 밴 암캐 똥칠이를 부탁한다. 아이들이 정성껏 가꾸던 꽃밭은 모두 망가졌고, 정들여 키우던 애완견도 데리고 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사라져 버린 똥칠이와 뱃속의 생명들…. 단서는 ‘검은 그림자 목소리’로 불리는 큰 머리와 낮고 굵은 목소리를 지닌 얼굴을 알 수 없는 범인이라는 것뿐이다. 봉기와 송이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똥칠이를 납치한 검은 그림자 목소리를 찾아 텅 빈 도깨비 마을을 구석구석 누빈다.

아이들은 사람들이 모두 떠난 마을을 돌며 잊었던 추억을 하나둘 기억해 내고, 마을을 다시 볼 수 없음을 서글퍼한다. “모든 도시는 좋아할 만한 구석이 있다”는 어느 건축가의 말을 되뇌이는 것처럼.

작가는 “(아이들이) 버려야 할 것과 버려서는 안 될 것에 대해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다”면서 “수백 년이 흘러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멋진 도시, 주인 잃은 동물이 더 이상 거리를 배회하지 않는 그런 마을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3-01-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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