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소설 ‘채식주의자’는 어떻게 세계 문학을 사로잡았나

한국어 소설 ‘채식주의자’는 어떻게 세계 문학을 사로잡았나

방승언 기자
입력 2016-05-17 17:36
업데이트 2016-05-1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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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번역가도 공동 수상
‘채식주의자’ 번역가도 공동 수상 소설가 한강(46)이 16일(현지시간)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이 책을 번역해 해외에 처음 소개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왼쪽)도 한강과 함께 공동 수상자로 호명됐다.
연합뉴스
소설가 한강이 아시아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인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공동 수상자인 영국인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에게도 못지않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연방 이외 국적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작가와 번역가의 역할을 동등하게 평가하고 있다. 이번에 수상의 영예를 함께 누리게 된 한강과 스미스는 5만 파운드(약 8500만원)의 상금 또한 정확히 나눠 가진다.

28세의 젊은 신예 번역가 스미스는 고작 7년 전 처음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캠브리지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영국 내에 한국어 전문가가 없다는 점에 주목해 한국어 연구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스미스는 “이상하게도 한국어가 매우 합당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영국에 실질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거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내 이유였다”고 말한 바 있다.

외국어 학습 경험 자체가 전무했던 스미스는 한국 땅을 직접 찾아 적극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 공부에 전념했다. 지난해에는 영국 런던대학에서 한국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최근에는 비영리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 프레스’(Tilited Axis Press)를 설립, 다수의 한영번역 작품 출간에 힘쓰는 중이다.

스미스가 처음 번역에 나선 것은 의외로 상당히 학술적인 필요 때문이었다. 그는“나는 한국 문화와의 접점이 없다. 한국인을 만나봤던 기억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었고, 읽기와 쓰기를 모두 배울 수 있는 좋은 학습방편이라고 여겼기에 번역활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처음 번역에 나섰던 것은 한국어를 학습한지 고작 2년째 되던 시점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스미스는 연습 단계였던 자신의 번역이 “끔찍했다”며 “모든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야 했을 정도로 미숙했다”고 자평했다.

그런 스미스에게 ‘채식주의자’는 프로 번역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해준 사실상의 첫 작품이다. 처음 내놓은 정식 작품을 통해 맨부커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그는 “번역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처럼 길지 않은 시간 끝에 맨부커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스미스가 타고난 천부적 재능만으로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스미스는 영어권 독자에게 본질적으로 생경한 개념들을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작가와의 긴밀한 공조 하에 섬세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한강의 또 다른 작품 ‘소년이 온다’(영문명 Human Acts)를 번역하던 당시 영국 가디언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소설 ‘소년이 온다’에는 ‘혼’이라는 어휘가 등장하는데, 영어권에는 ‘망자의 넋’이라는 맥락에서 사용된 이 단어와 완벽한 동치에 놓여 있는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숙고를 거쳐야만 했다고 스미스는 회상한다. 그는 “영한사에 따르면 ‘혼’에 대응하는 표현으로는 ‘soul’이 있다. 그러나 대신에 나는 ‘shadow’ 또는‘soul-self’라는 어휘를 사용했다”며 “영어권에서 ‘soul’이라는 어휘는 기독교적 맥락을 연상시키지 않고는 거론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스미스의 이번 번역은 미추와 공포가 혼재하는 작품세계를 정교하게 옮겨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이드 통킨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장은 “압축적이고 미려하며 불편한 이 소설은 독자의 정신, 어쩌면 꿈의 영역에까지 오랜 시간 잔류할 작품”이라며 “데보라 스미스의 지극히 정치한 번역적 결정들은 소설의 면면에 자리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이한 조화를 매번 적확하게 짚어낸다”며 스미스의 역할을 극찬했다.

이어 “이 소설은 잔혹한 호러와 멜로드라마, 냉철한 알레고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독보적 차원의 침착, 재치, 절제를 겸비하는, 거의 기묘하기까지 한 작품”이라며 “이것은 작가인 한강뿐만 아니라 데보라 스미스의 놀라운 번역에 의해 구현된 것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향후 한국문학번역원은 스미스가 설립한 틸티드 악시스 출판사를 지원해 2018년까지 김연수, 황정은 등의 작품을 영국에 출간할 계획이다. 현재 스미스는 배수아 작가의 저서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서울의 낮은 언덕들’의 번역작업을 이미 시작했다.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10월 레터북스에서, ‘서울의 낮은 언덕들’은 내년 1월 딥 벨룸 출판사에서 출간된다.

방승언 기자 earny0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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