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 그의 꿈] 꿈 꿔라! 꿈 꾸는 데 돈 안 든다

[그의 삶 그의 꿈] 꿈 꿔라! 꿈 꾸는 데 돈 안 든다

입력 2011-08-07 00:00
업데이트 2011-08-07 11:4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집념으로 일군 중남미문화원 이복형 홍갑표 부부

중남미문화원은 30여 년간 중남미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이복형 대사와 그 부인 홍갑표 여사가 중남미의 예술과 유물을 알리기 위해 1993년 설립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박물관·미술관·조각관에 이어 최근에 문을 연 종교관과 벽화까지 중남미의 다채로운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이미지 확대


평소 중남미 인디오 음악을 좋아하는 필자에게 중남미문화원은 설렘으로 다가왔다. 약속시간 30분 전에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중남미문화원을 찾았다. 조금 일찍 가서 문화원의 시설과 소장품을 대략 살펴본 후에 인터뷰를 할 요량이었다. 북한산 줄기에 이어진 곳이라 경치는 수려하고 아늑했다. 입구에는 고양향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향교 와 문화원이 같이 있는 것이다. 약간 의아했지만 둘 다 교육과 휴식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금세 수긍이 갔다.

매표소에 가서 온 취지를 말하자, 곧바로 이복형 원장이 나와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이 아닌가. 먼저 문화원 구경을 하고 나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더니 그러지 말고 차 한 잔 한 후에 직접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예정과는 조금 빗나갔지만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박물관 안에 있는 방에서 허브차를 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온통 중남미풍, 스페인식의 식탁과 의자, 은제 그릇 그리고 여러 장식품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더한다. 벽면에는 각종 훈장과 상패가 가득하다.

차를 마신 후 이복형 원장과 문화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박물관. 중앙홀에는 스페인식 분수대가 있고 천장에는 태양신이 조각되어 있다. 전시실은 모두 네 개인데 마야 아즈텍 잉카문명의 유물들이 가득하다. 이 많은 유물을 어떻게 다 모았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중남미에서 외교관 생활을 할 때 집사람이 틈틈이 모았어요. 나는 별로 한 게 없지. 집사람이 몸통이고 나는 꼬랑지야.”(웃음)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부부가 함께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박물관을 나와 간 곳은 야외조각관. 중남미 각국에서 기증받은 조각작품들이 주변 자연환경과 잘 조화되어 있었다.

이미지 확대


“2년여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01년 개관했어요. 중남미 우방국에 작품을 기증해 달라고 요청을 해서 이루어진 것이지요. 모으는 것도 힘들었지만 운송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는데 한진해운에서 도움을 줬지요.”

조각공원에는 중남미 현대 조각가들의 작품과 스페인 건축풍의 공원대문, 항아리벽화, 장식조형물 그리고 산책로가 잘 어우러져 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사색에 잠기기 좋은 곳이다.

조각공원을 지나서 조금 내려가면 거대한 벽화(23m×5m)가 있다. 마야의 상형문자, 아즈텍의 연보를 테마로 해서 최근에 만든 것이다. 이복형 원장은 벽화가 마주 보이는 계단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가자고 했다.

“이 벽화와 종교관은 최근에 만들었어요. 박물관·미술관·조각공원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 거지요. 만들 때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해놓고 나니까 훨씬 마음이 놓이네요.”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종교관. 최근에 종교관 개막 기념으로 ‘바로크종교유물전’을 개최해서 성황을 이루었다. 거대한 성당제단과 마리아상, 성모와 아기 예수, 그리고 최후의 만찬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래스가 돋보인다. 성당제단은 너무 커서 각각을 분리해서 들여온 후 다시 조립했다고 한다. 기도와 명상으로 적합한 곳이다.

중남미 문화 교류의 현장

유물과 시설이 다양하고 아기자기해서 돌아보는 데만 시간이 꽤 걸린다. 중간중간 쉬면서 그동안 문화원을 가꾸어온 얘기를 들었다. 유물 한 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까지 부부의 사랑과 정성, 눈물과 땀이 배어 있었다.

“아침부터 잡초 뽑고 휴지 줍고 하면 하루가 금방 가요. 집사람은 사다리 타고 올라가 나무 손질하는 걸 못하게 해요. 떨어질까 봐. 그래도 그건 내가 합니다. 집사람 있을 때는 안 하고 눈치 봐서 하고 있어요.”(웃음)

이어서 미술관에 딸린 부부의 살림집을 보여줬다. 거실과 안방, 부엌만 있는 조촐한 살림. 소박하고 검소한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미술관에는 중남미 현대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옆에는 조그마한 기념품 가게가 있다. 여기 전시된 작품들은 중남미 작가들의 전시회를 열어주고 원하는 작품 한두 점을 기증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복형 원장은 마치 구경 나온 젊은이에게 설명하듯 자상하게 문화원 곳곳을 안내해주었다. 걸린 시간은 1시간 30분여, 새벽부터 일을 하느라 피곤했을 텐데도 몸에 밴 친절함으로 조곤조곤 얘기해 주는 품이 넉넉하기만 하다. 야외 테라스에서 주스 한 잔을 마시면서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하자, 저녁에 행사가 있어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나머지는 부인인 홍갑표 이사장에게 맡긴다. 단아한 모습과는 달리 말소리에 강단이 실려 있다. 먼저 어떻게 해서 문화원을 설립하게 되었는지 물어봤다.

“40년 전에 이곳을 샀어요. 보는 순간 마음에 들어서 오전에 보고 오후에 계약을 했지요. 처음에는 문화원을 설립할 생각도 없었는데 사람들이 와서 보고 좋다고 하고 칭찬을 하니까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홍갑표 이사장의 그때 나이가 30대 중반. 동네 할머니 집에서 묵으면서 당시 1~2원 하는 목련 묘목을 심고, 향나무 씨를 뿌렸다. 주변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서 힘든 줄도 몰랐다. 평상시 골동품을 좋아해서 수집해 왔는데 남편이 중남미에 외교관으로 부임하니까 그곳 유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틈틈이 모았다.

“저는 나이 든 사람보다 젊은이들하고 얘기하는 걸 좋아해요. 그러면서 항상 하는 말이 있죠. ‘꿈 꿔라! 꿈 꾸는데 돈 안 든다.’ 박물관을 하기 위해 기도도 많이 했어요.”

문화원의 건물들은 홍갑표 이사장의 작품이다. 현지에서 본 건물들의 형태를 조합하여 설계도를 만들고 모형을 제작해서 건물을 지었다. 인부들의 식사도 직접 해주고 벽돌 하나 쌓는 것, 나무 한 그루 심는 것도 허술하게 하지 않았다.

돈이 하는 것이 아니라 뜻이 하는 것

“문화원 설립할 때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출발했어요. 후대에 영원히 물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자식들에게도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줘야지, 고기를 잡아주진 않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에요.”

IMF 때는 운영이 아주 힘들었다. 자금난이 심해 경매도 당하고 전기요금을 못 내 전기가 끊어질 뻔한 위기도 있었다. 퇴직금을 일시로 받아서 빚을 갚기도 했다.

이미지 확대


“이래서 사람들이 못하게 말렸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하지만 감당 못할 시련을 주진 않습니다. 모든 것은 고난 속에서 성장하는 법이니까요.”

중남미문화원은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박물관(1994), 미술관(1997), 조각공원(2001)에 이어 최근에 문을 연 종교관과 대형벽화에 이르기까지 시설을 확충하고 새로운 볼거리들을 제공해 왔다. 그리고 다른 문화시설과 달리 월요일에도 문을 연다.

“새로운 걸 시작할 때마다 반대가 심했어요. 이제 그만큼 했으니까 쉬라는 소리도 들리고 계속 투자하려면 감당이 되겠느냐고도 해요. 하지만 지금 안 하면 언제 하겠어요?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요. 돈이 하는 것이 아니라 뜻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아무도 구경하러 오지 않으면 나 혼자 여기서 커피 마시지 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뭐가 무섭겠어요?”(웃음)

홍갑표 이사장의 말은 때론 상냥하게 때론 거침없이 이어졌다. 살아온 얘기를 하면 밤을 새도 모자랄 것 같았다. 문화원을 하면서 어떨 때 가장 행복하냐고 물었다.

“유치원 아이들하고 놀 때 행복해요. 아이들한테 이렇게 말하죠. ‘나중에 커서 애기 낳으면 여기 다시 놀러와. 아빠 어렸을 때 여기 만든 할머니 봤다고 하렴.’ 그러면 아이들이 ‘네’ 해요. 그 순간 참으로 행복합니다.”

중남미문화원은 중남미의 예술품으로 가득한 이복형 홍갑표 부부가 만든 또 다른 예술품이었다.

글_ 김창일 기획위원

많이 본 뉴스
최저임금 차등 적용, 당신의 생각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심의가 5월 21일 시작된 가운데 경영계와 노동계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최대 화두는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입니다. 경영계는 일부 업종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요구한 반면, 노동계는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