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김석출! 고마워요, 사이먼!

땡큐, 김석출! 고마워요, 사이먼!

입력 2010-10-17 00:00
업데이트 2010-10-1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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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재즈 드러머 사이먼 바커 씨가 만난 한국의 무형문화재

“자,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 82호’가 무엇일까요?” 당신이 이 질문을 받고 보일 반응은 둘 중 하나. 어이가 없어 웃거나, 이걸 아는 게 이상하다며 비난하거나. 멀리 82호까지 갈 것도 없다. 1호, 2호 혹은 3호를 아는 사람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렇듯 생소한 무형문화재, 그것도 1호도 아닌 82호 무당 故 김석출 선생을 찾아 한국을 7년 동안 무려 열일곱 번이나 온 사람이 있다. 놀랍게도 외국인이고, 신통방통하게도 음악인이다. 더구나 그는 김 선생을 찾는 여정 속에서 국악인, 판소리꾼, 오고무 명인, 장구 대가 등을 만나며 한국의 전통음악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땡큐, 마스터 킴>의 주인공이기도 한, 호주 재즈 드러머 사이먼 바커 씨(41세)의 영화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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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은 호주의 유명 재즈 드러머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던 한국인 학생을 통해 김 선생의 장구 연주를 접하게 된다. “음악가라면 누구나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음악에 언제나 놀라운 감정을 덧붙이고 싶어 하죠. 하지만 또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완전히 모르는, 한 번도 접하지 않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입니다. 그런데 김 선생의 장구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바로 그런 감정이 들었습니다. 희귀하고 놀라웠어요. 직감적으로 그 음악이 날 완전히 바꿀 거란 걸 알았죠.”

그 이후 김 선생을 찾아 열일곱 번이나 한국을 방문했는데도 왜 그토록 만나지 못했느냐고 묻자, 사이먼은 역지사지를 제안했다. “만약 당신이 호주의 어떤 전통음악인을 이름만으로 찾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외국인에게 그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잊힌 그분을 찾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의 안내를 맡아준 건 국악인 김동원 선생, 전통 북 연주가, 원광대 전통공연예술학과 교수,이다. 통역은 물론, 한국 전통음악을 이해하게 돕고, 명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사이먼은 그의 도움으로 만난 판소리꾼 배일동 선생에게서 한국의 ‘한’을 느끼고, 오고무의 진유림 명인을 만나 ‘호흡’에 대해 배운다. “처음 배일동 선생의 노래를 들었을 때 그 상황도, 언어도 어느 것 하나 한 번도 접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음악의 감정이 잘 전달된 나머지 감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한국인의 음악은 바로 그렇게, 감정을 전달하는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이먼은 한국음악을 관통하는 특징을 ‘조화와 균형’이라고 대답했다. 음악이 개인과 사회와 문화를 표현하는 소통의 도구라고 했을 때, 한국음악은 그 안에서 모든 요소가 어우러진다는 것. 말에 높낮이가 붙으면 곧 창이 되고, 모든 소재가 음악에서 이야기되는 것도 건강해 보인다고 했다. “제가 접한 여러 가지 한국의 전통악기 중 장구가 기억에 남습니다. 장구는 아주 작고 간단한 악기지만 그 연주방법에 따라 다채로운 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둥둥둥’ 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밑에서 움직이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요.”

돌고 돈 여행길의 끝에서 사이먼은 마침내 김석출 선생을 만난다. 한데, 극적이고 행복한 만남은 아니었다. 선생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였다. 선생의 임종을 직전에 두고서야 두 사람은 겨우 만났다. 선망의 대상이고, 존경하는 인물인 김 선생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사이먼은 혹시 실망하지 않았을까. “실망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으니까요. 다만 오랫동안 커다란 존재였던 분이 굿을 위해 누군가의 등에 업혀 방에 들어왔을 땐 마음이 많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현자가 한 문장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모든 지혜를 풀어놓듯이, 짧은 만남이었지만 너무나 강렬해서 영원 같은 순간이었어요.”

그 짧은 순간을 뒤로 하고 영화처럼, 선생은 사흘 후 작고했다. 사이먼은 그의 장례에까지 참석했고, 엠마 프란츠 감독과 함께한 영화 <땡큐, 마스터 킴>을 통해 한국인조차 잘 모르는 김석출 선생을 세상에 드러냈다. 사이먼이 김 선생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그런데 왜 영화 제목은 ‘땡큐, 마스터 킴’일까. “더 어렸을 때 드럼을 치려고 앉으면 드럼이 마치 거대한 문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난 그 위에 앉아 문어를 조정하고 때려눕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드럼 연주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게 바뀌었어요. 나와 악기의 진정한 연결고리를 찾은 것이지요. 드럼이 이제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 변했습니다.” 정말이지, 김 선생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이 완전히 바뀔 것 같았다는 그의 직관은, 제대로 적중한 셈이다.

사족 한 말씀.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1호는 종묘제례악, 2호는 양주 별산대놀이, 3호는 남사당놀이다. 그냥 외워보자. 전통을 사랑하는 건 별 게 아니다.



글·사진 송은하 기자 | 통역 조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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