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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아버지의 이름으로’ 반세기만에 獨방문

朴대통령, ‘아버지의 이름으로’ 반세기만에 獨방문

입력 2014-03-25 00:00
업데이트 2014-03-2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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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 통일의지 표명 대가로 상업차관 얻어내…이번엔 ‘통일독트린’ 주목

“국토의 양단, 민족의 분단이라는 쓰라린 현실은 현대의 가장 큰 치욕이며 인류이성의 결정적인 자기부정이다. 이 부조리의 현상이 타파되지 않는 한 인간은 역사의 주인공 자격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꼭 50년 전인 1964년 12월11일.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의 한 강의실 강단에 선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이런 절절한 목소리로 통일을 주창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80달러 최빈국 대통령의 호소는 비록 심금을 울렸을지언정 허공의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흩어졌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당시 12살 소녀이던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베를린으로 향한다. 선친이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임금을 담보로 경제개발의 씨앗이 된 상업차관을 빌렸던 그 땅에서 이번에는 교역규모 세계 8위, 1인당 GDP 2만4천달러 부국의 대통령으로서 ‘통일의 문’을 노크하기 위해서다.

◇ 통독상징 브란덴부르크문 찾고 드레스덴서 ‘통일독트린’ 발표 = “동서 베를린의 장벽을 따라 자동차를 달리며 건너쪽 어두운 또 하나의 세계를 바라다 보며 우리나라 휴전선과 판문점을 연상했다. 철조망 건너 멀리 바라다 보이는 동독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휴전선 북방에 살고 있는 우리 북한동포를 생각했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50년 전인 1964년 12월7∼14일 당시 칼 하인리히 뤼브케 대통령의 초청 방독을 마치고 쓴 장문의 ‘방독 소감’의 한 구절이다. 그는 이 글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의 오늘’을 부러워하면서 경제개발을 다짐하는 동시에 통일에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베를린 장벽에 대해 “이 장벽이 철거되고 모든 독일 사람들이 마음대로 다니고 마음대로 이야기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 날이 하루속히 도래할 것을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그 때는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꿈을 그려보기도 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러나 이것은 결코 꿈이 아니고 실현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 날이 빨리 오도록 하기 위해 전민족이 총력을 집중해야겠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고 각오를 새겼다.

당시 분단국이라는 동병상련의 처지였던 독일 뤼브케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초청하고 최고의 예우로 맞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차관을 요청했다 거절당한 직후였다. 가난한 나라의 원수에 불과한 그의 통일과 경제부흥 의지도 그 반향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반세기만에 이뤄지는 딸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방문 일정도 선친의 염원을 계승하려는 듯 이른바 ‘통일 행보’로 가득차 있다. 통독 독일에서 통일의 영감을 얻고 연초 제기한 자신의 ‘통일 대박론’에서 한단계 격상된 ‘독트린’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를 뒷받침하듯 박 대통령의 일정은 통독의 상징적 장소로 꼽히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시찰에 이어 통독 주역 6명 접견, 드레스덴 공대연설 등 통일관련 행보가 두드러진다. 특히 박 대통령이 구동독지역인 드레스덴 공대연설(28일)에서 새로운 대북제안과 통일을 위한 국제협력 요청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통일대비 구상을 담은 ‘드레스덴 통일 독트린’을 내놓을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포괄적 대북지원(1995년 3월)과 3개월 뒤 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2000년 3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북한 핵폐기 촉구(2011년 5월) 등에 이어 박근혜식 대북 화해·통일 구상을 역사적인 통일의 현장에서 선포하는 셈이 된다.

◇ 선친과 얼싸안고 눈물뿌린 파독 광부·간호사 만나…”역사의 인연” = 이번 박 대통령 방독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미리 꼽으라면 반세기전 낯선 독일 땅으로 혈혈단신 건너가 조국재건의 씨앗을 뿌린 파독 광부와 간호사와의 만남이 될 것 같다.

1964년 12월6일 전용기도 아닌 독일 정부가 보내준 루프트한자 649호기에 올라 7개 도시를 경유하며 장장 28시간의 비행 끝에 베를린에 도착한 선친은 독일에서 1억5천900만 마르크(약3천500만 달러)의 차관을 얻는데 성공했다. 각각 1만여명, 8천명에 이르게 된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임금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이 차관과 이들이 국내로 송금한 외화는 추후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등을 건설하며 우리 경제가 재건의 길로 들어서는 초석이 됐다.

당시 체류 나흘째인 12월10일 박 전 대통령은 루르 지방에 위치한 독일 함보른 탄광으로 향했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눈물의 연설을 했던 그곳이다. 인근 탄광에서 일하는 300여명의 파독 광부들과 루르 지방도시 뒤스부르크와 에센의 간호학교에서 일하는 파독 간호사 50여명이 모두 한복차림으로 박 전 대통령 내외를 기다렸다.

현지 광부들로 구성된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하자 현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준비된 원고를 내던지고 “국가가 부족하고 내가 부족해 여러분이 이 먼 타지까지 나와 고생이 많습니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 생전에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라며 격정연설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선창으로 시작된 애국가 합창은 후렴구에 이르러 어느새 흐느낌과 통곡으로 변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사고로 목숨을 잃은 광부에게 조의를 표하고 자리를 떴다. 광부들에게 국산 ‘파고다’ 담배 500갑을 나눠주고 나서다.

박 전 대통령도 ‘방독 소감’을 통해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가 자신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산이 많던데 산이 많으면 경제발전이 어려우니 고속도로를 깔아야 한다”, “일본과도 손을 잡으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소개했다. 실제 이듬해인 1965년 박 전 대통령은 일본과 한일협정을 맺고 그때 받은 청구권자금과 독일의 상업차관 등을 종자돈으로 경제개발의 시동을 걸 수 있었다.

50년 뒤 딸인 박 대통령이 독일을 찾는데 걸린 시간은 11시간. 전용기인 공군1호기에 몸을 싣고서였다. 박 대통령은 28일 옛 동독지역인 독일 남동부 작센주의 드레스덴에서 이제는 백발이 된 이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난다.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제2의 경제도약을 다짐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엄청난 역사적 인연”이라고 말했다.

특히 드레스덴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5년 2월 연합군의 공습으로 25만명이 사망하며 초토화됐으나 통독 후 연방정부의 경제구조개선 사업 등에 힘입어 독일을 넘어 유럽의 대표적 과학비즈니스 도시로 탈바꿈한 장소다.

박 대통령은 ‘히든 챔피언’이라는 강소기업의 발원지인 이곳에서 과학기술을 겸비한 중소기업들의 발전상을 둘러보며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새로운 엔진을 찾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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