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거기에 갔을까”...정치인들의 행보에 담긴 비밀

“왜 하필 거기에 갔을까”...정치인들의 행보에 담긴 비밀

이영준 기자
이영준 기자
입력 2016-06-09 15:30
수정 2016-06-0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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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곳곳에 배치된 복선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뒷통수를 치는 반전을 선사합니다.

최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곡성’을 본 관객이라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야 장면 하나하나에 함축된 의미가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릎을 탁 쳤을 겁니다.


정치도 이와 비슷합니다. 정치인의 일정과 발언에도 복선이 깔린 경우 많습니다. 영화나 소설과의 차이점이라면, 이런 작품에서의 스포일러는 관객과 독자들이 재미를 느끼는 데 찬물을 끼얹지만, 정치에서의 스포일러는 정치의 재미를 배가시킨다는 점.

특히 정치인이 어디를 방문했다, 어디로 갔다고 하면 난리법석입니다. 왜그럴까요.
정치인의 행보가 바로 정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반기문] 안동 하회마을을 찾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5월 29일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서애 류성룡의 고택 앞에 ‘나무 중의 제왕’이라 불리는 ‘주목’을 식수한 뒤 서애 선생의 고택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반 총장이 많고 많은 유적지 중에 왜 하필 서애 류성룡 고택을 찾았을까요?

→ 반 총장은 외교관 출신입니다. 각국 VIP를 대하는 외교관 만큼 의전에 민감한 사람도 없습니다. 외교부에서는 “안동 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이기 때문에 방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반 총장의 답변은 전혀 달랐습니다. 반 총장은 “서애 선생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방문했다”고 밝혔습니다. 애국심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그 누구도 애국심에 대해 의심받지 않는 한 사람 바로 ‘대통령’ 아닐까요. 반 총장의 하회마을 방문이 대권 행보의 일환으로 해석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반 총장에 대권에 대한 의지가 없었으면 서애 선생의 고택을 방문하진 않았을 거란 얘깁니다.



[문재인] 다시 네팔로 떠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월 중순 네팔로 트레킹을 떠난다고 합니다. 그동안 바빴던 정치 일정을 뒤로하고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는 취지라고 합니다.

문 전 대표는 12년 전인 2004년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눌러났을 때에도 네팔로 떠났던 적이 있습니다. 숨 고르기를 하려면 국내에서 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이 시점에 네팔로 가려는 걸까요.

→ 문 전 대표는 국내 정치와 당분간 절연하기 위해 네팔행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 잠적하면 언론이 따라붙어 귀찮게 할 가능성이 높고, 칩거하는 이유에 대해 각종 정치적 해석이 난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보다 국외로 떠나면 거리두기 효과도 2배가 된다고 합니다. 또 참여정부 시절 모든 것을 내려놓고 네팔로 떠났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데자뷰’ 효과도 노린 것 같습니다. 현실 정치와 관련된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의도라면 지난 총선에서 호남 참패의 후유증도 씻어내려는 모양입니다.



[안철수] ‘친노’의 성지 봉하마을을 찾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인 지난 5월 23일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마을에는 ‘안철수 대표의 봉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친노 일동’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었습니다.

하지만 안 대표는 마을 주민들에게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왔느냐”며 욕설 세례를 받았습니다. 안 대표는 이런 봉변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왜 봉하 마을을 찾았을까요. 

→ 안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당연히 안 대표를 곱게 볼 리 없다는 것을 안 대표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안 대표는 ‘정면 돌파’를 택했습니다. 만약 가지 않았다면 “겁먹고 피했다”며 또 비판이 쏟아졌을 겁니다. 가면 봉변을 당하고, 안 가도 욕먹을 게 예상되는 행보라면, 정치적 상처가 조금 덜한 쪽을 택하는 게 정치인의 생리라고 합니다. 안 대표는 봉하마을 방문으로 봉변을 당했지만, 당당하게 맞서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PK(부산·경남) 지역의 민심을 다독이는 효과도 충분히 얻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유력 정치인이 내가 사는 곳을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유권자들의 표심이 움직인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김무성] 옥새들고 부산으로 나르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3월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 결과에 반대한다는 입장과 함께 공천장에 대표 직인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으로 내려가버렸습니다.

이 사태는 ‘옥새반란’으로 불렸습니다. 후보자들은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공천을 받아도 당 대표의 직인이 찍힌 공천장을 받지 못하면 후보 등록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김 전 대표는 왜 부산으로 가버린 걸까요.

→ 김 전 대표가 옥새, 즉 대표 직인을 들고 부산으로 튀었다고들 하지만, 실제 대표 직인은 서울 여의도 당사 당 대표실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당시 원유철 원내대표가 김 전 대표 대신 대표 직인을 찍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굳이 부산까지 따라가서 설득할 필요는 없었던 셈이죠. 김 전 대표는 공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단호한 뜻을 강조하기 위해 부산행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계속 서울에 있었으면 김 전 대표의 결연한 의지가 그렇게 강조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김 전 대표는 유승민 의원의 대구 동을 지역과 이재오 전 의원의 서울 은평을,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지역구였던 서울 송파을 등 3곳을 무공천하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김 전 대표는 하루만에 상경했습니다. 김 전 대표가 부산 영도다리 위에서 분위기 잡고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 취재 기자에게 포착되기도 했는데, 이 또한 의도된 것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손학규] 전남 강진 토굴에 칩거하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은 2014년 7·30 재·보궐 선거에서 경기 수원병에 출마해 패배한 뒤 전남 강진 토굴로 칩거에 들어갔습니다.

칩거할 거면 그냥 살던 아파트에 칩거해도 될 것을 왜 굳이 토굴로 들어가야 했냐는 의문이 상당히 제기됐습니다. 또 숨어 살 거면 남들 몰래 떠나면 될 것을 왜 굳이 널리 소식을 알리면서 떠난 것일까요.

→ 먼저 전남 강진이라는 장소가 의미심장합니다. 호남은 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 되는 곳이니까요. 그리고 토굴 칩거는 ‘속세를 떠났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꽤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도를 닦는다’는 느낌도 줍니다. 손 전 상임고문은 선거 패배 당시 “정계를 은퇴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토굴에 칩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손 전 상임고문이 아직 대권에 뜻이 있다”는 인식이 정치권에 퍼졌습니다. 마치 용이 승천을 기다리는 듯 ‘와신상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정치인은 욕 먹는 것 보다 잊혀지는 걸 더 두려워 한다고 합니다. 손 전 상임고문은 숨어 살았지만, 토굴에 살면서 잊혀지지 않았으니 효과 만점의 정치 행보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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