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제로원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복귀하겠습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출격 명령이 떨어지자 무대 뒤편 활주로에서 F-4E 팬텀 전투기 2대가 날아올랐다. 육중한 엔진소리는 관람객들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기 충분했다.
7일 오전 수원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는 ‘하늘의 도깨비’로 불리며 55년간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해온 F-4 팬텀 전투기의 퇴역식이 열렸다.
팬텀이 수원 상공을 비행하는 동안 전직 팬텀 조종사·정비사로 활약한 이재우 동국대 석좌교수, 이종옥 예비역 준위가 감사장을 받았다.
공군 소장으로 예편한 이재우 교수는 1969년 우리나라가 F-4D를 처음 도입할 당시 미국 본토에서 한국까지 공중 급유를 받으며 직접 기체를 몰고 온 조종사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이종옥 예비역 준위는 처음 도입된 기체를 정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예비역 ‘소장’ 대신 ‘전투 조종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교수는 “국민들께서 성원해주신 방위성금 헌납기로 부여된 사명을 완수한 것은 생의 큰 보람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교수가 울음을 참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하늘의 도깨비, F-4 팬텀이여 안녕”이라고 말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군참모총장 기념사와 국방부 장관 축사가 이어졌다.
신원식 장관은 “권선징악의 상징인 도깨비처럼 ‘하늘의 도깨비’ 팬텀은 적에게는 공포를, 우리에게는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줬다”며 “영공수호에 평생을 바친 팬텀의 고귀한 정신은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수 총장은 “팬텀은 공군의 전설이며, 50년 넘는 여정은 그 자체로 빛나는 공군의 역사”라며 “영원히 기억하고 기쁘게 추억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호국영웅석’이 마련됐다. 여기에는 팬텀을 타고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조종사 34명의 이름과, 추락한 팬텀 19기의 기체 번호가 적힌 안내판이 놓였다.
이영수 총장은 기념사 도중 순직한 조종사 34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렸다.
팬텀 2대는 32분 간의 고별 비행을 마치고 활주로에 내렸고 잠시 뒤 행사장 무대 중앙으로 들어섰다. 이들은 무대 양옆으로 세워진 6대의 팬텀과 함께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조종사가 팬텀의 시동을 끄고 내리자 객석의 관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손뼉을 치며 환영했다.
한 대당 2명씩 모두 4명의 조종사는 행사를 위해 따로 준비해 둔 조종간을 신원식 장관에게 상징적으로 넘기며, 모든 임무가 끝났음을 알렸다.
신 장관은 임무를 마치고 무대로 들어선 팬텀에 ‘명예 전역장’을 수여하고, 기수에 화환을 건 뒤 기체 오른편에 ‘전설을 넘어, 미래로’라는 문구를 적었다.
팬텀이 미국에서 처음 출고된 1958년에 태어난 공사 29기 예비역 조종사들도 팬텀의 날개 위에 꽃다발을 올리며 퇴역을 축하했다.
‘후배 전투기’들도 선배 팬텀의 퇴역을 축하하는 비행에 나섰다.
F-16 5대는 55발의 플레어(섬광탄)를 발사해 55년간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한 팬텀을 기렸다.
1969년 F-4D 6대 도입과 1975년 방위성금 헌납기 5대 인수를 기념하고자 KF-16 6대와 FA-50 5대가 비행했으며, 정찰기 RF-4C의 임무를 이어받은 RF-16 2대도 하늘을 날았다.
팬텀의 모기지였던 대구·청주·충주기지를 대표하는 F-15K와 F-35A, KF-16이 각각 3대씩 총 9대가 편대를 이뤄 비행했다. 마지막으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A 3대가 무대 중앙 상공을 가르며 공군 전투기의 세대교체를 알렸다.
F-4 팬텀은 1969년 공군에 처음 도입됐다. 당시 세계 최강의 신예기였던 F-4D를 도입하면서 북한 공군력을 압도할 수 있었다고 공군은 설명했다.
공군은 F-4D와 함께 개량형인 F-4E, RF-4C 등 총 187대의 F-4 기종을 운용했으며 이 가운데 F-4D와 RF-4C는 2010년과 2014년 각각 퇴역했다.
팬텀은 소흑산도 대간첩 작전과 미그기 귀순 유도, 옛 소련 핵잠수함 식별과 차단, 러시아 정찰기 차단과 퇴거 작전 임무 등을 수행했다.
이날 후배 전투기들이 내는 굉음과 퇴역식 참석자들의 축하 속에서, 팬텀의 55년간 영공수호 임무는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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