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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은 사회’…원영이 ‘3년학대’ 알고도 왜 못구했나

‘눈감은 사회’…원영이 ‘3년학대’ 알고도 왜 못구했나

입력 2016-03-11 16:20
업데이트 2016-03-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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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 사진 증거 있었지만 특례법 없어 강제 수사 못해 유치원 그만둔 뒤엔 사각지대 방치…“아동보호 인프라 강화해야”

계모를 따라나섰다가 길에 버려진 신원영(7)군의 학대 피해사실은 3년전 처음으로 외부인에게 알려졌다.

회초리 자국이 선명한 사진 등 학대의 증거도 있었지만, 원영군 부모는 경찰 조사 한번 받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이 넘도록 지역아동센터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정기적으로 원영군 가정을 관찰했지만 원영군이 끝내 버려지는 사태를 막아내진 못했다.

도대체 왜 우리사회는 계모에게 학대받는 어린 아이를 보고도 구하지 못한걸까.

◇ 아동학대범죄 특례법 생기기 전…“강제력 없었다”

원영군 남매가 지역아동센터 직원 눈에 처음으로 발견된 건 2013년 추운 겨울날이었다.

날씨와 맞지 않는 얇디얇은 옷을 걸치고 있던 두 남매는 딱 봐도 ‘방임’ 학대피해 아동이었다.

얼마뒤 원영군을 씻기려던 센터 직원은 종아리와 허벅지에서 붉고 선명한 회초리 자국을 발견한다. 신체 학대 정황이 너무나도 명백했다.

2014년 3월 증거삼아 찍은 원영군의 학대 의심 사진을 들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고,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5차례에 걸쳐 원영군 가정을 방문했다.

이때만 해도 아동학대범죄에 관한 특례법이 생기기 전이라 학대 의심 가정을 방문할 때 경찰에 동행을 요청할 이유가 없었다.

이 때문에 경찰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친부를 만나 현장조사를 하는 데 그쳤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원영군 부모가 신체학대와 의식주 등 기본적인 양육을 하지 않는 물리적 방임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친부와 상의해 원영군을 장기보호시설에 위탁하기로 했다.

자리가 부족해 즉시 위탁은 어려웠고 두 달간 기다린 끝인 2014년 7월에서야 입소 가능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원영군의 친부는 돌연 “아이가 상처받을 것 같다. 내가 키우겠다”며 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당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서는 부모가 거부하는데 자녀를 물리적으로 떨어트려 놓을 강제력과 권한이 없었다. 사회 분위기도 그랬다.

이후로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원영군 남매와 부모, 할머니에게 정기적으로 연락하거나 방문 상담했다. 하지만, 추가적인 학대 정황이 없고 보호자측이 기관의 방문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2015년 4월30일 원영군의 사례관리를 종결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당시만해도 사회 분위기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부모와 보호자 측에서 강력히 거부하면 조사나 상담, 자녀 분리를 강하게 밀어붙일 법적 근거가 없었다”고 말했다.

◇ 특례법 이후, 상황 좀 좋아졌을까…대안은 ‘지역 네트워크 구축’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사건 이후 신설된 아동학대범죄에 관한 특례법으로 아동학대 의심 가정 방문 시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권한이 확대·강화됐다.

부모의 의사와 상관없이 현장에 출입해 아동 또는 학대 행위자를 조사하거나 질문할 수 있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피해아동 보호를 위해 가해 부모와 격리, 피해아동을 보호시설로 인도하는 등의 응급조치도 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의 아동학대관리 체계로도 확인할 수 없는 아동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특히 취학 전 어린이의 경우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 교육·보육시설에 맡겨지지 않고 집에서만 지낼 경우 학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다니던 유치원마저 그만두고 집에만 머문 원영군의 행적을 확인할 만한 기록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사례관리를 종결한 2015년 4월30일부터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이달 4일까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처럼 취학전 어린이의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최근 양육수당과 보육료 미신청자를 찾아 아동학대를 감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이 또한 수당과 보육료만 받고 자녀를 학대하는 가정은 감시망에서 빠져있다.

전문가들은 아동이 집 안에만 머물게 되는 것이야말로 학대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가장 큰 위험요인이라면서 지역사회의 네트워크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해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이웃·학교·읍면동 주민센터 등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활용해 아동학대 조기 발견체계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교사, 읍면동 주민센터 공무원이 의무교육 미취학자 및 장기 무단결석 아동의 가정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확인하게 할 방침이다.

동네 사정을 훤히 아는 이웃이나 사회복지사 등이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을 들여다보고 즉시 신고하면 극단적 상황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 인프라 없이 대책 만들기만 ‘급급’

안타까운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정부 각 부처는 대책을 강화해 아동학대 관리 시스템을 보다 공고하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학대로부터 보호 중인 아동에 대한 보호조치를 강화하는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앞으로는 ‘귀가 조치 권한’이 지자체장에게만 주어질 전망이다.

피해아동을 함부로 원가정으로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경찰 역시 ‘교육적 방임’도 범죄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하겠다며 가정 내 아동학대 수사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시스템은 날로 단단해지고 있지만, 정작 아동학대 사례를 직접 관리해야 하는 아동전문보호기관은 그 역할과 책임에 비해 규모와 인력,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겨우 54곳에 불과하며 상담원은 고작 364명(2014년) 뿐이다.

심지어 예산은 작년 488억여원에서 올해 372억여원으로 34% 가량 축소됐다.

아동보호전문기관뿐 아니라 학대피해아동의 보호시설도 열악하다.

피해아동이 가해 부모와 분리후 2∼3개월 가량 머물면서 치료를 받는 학대피해아동보호쉼터는 전국에 46곳이다. 한곳당 수용인원은 겨우 7명. 한번에 수용가능한 전체 인원은 322명이다.

원가정과 완전히 분리가 필요한 아동은 장기보호시설(보육원, 일반 쉼터 등)로 옮겨지는데, 지자체가 관리하는 장기보호시설은 학대 아동만 돌보는 게 아니어서 전문적인 상담이나 치료는 기대하기 어렵다.

학대 아동을 기피하는 장기보호시설도 있다고 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 관리 시스템은 이제 어느 정도 갖춰져 가고 있다고 본다”며 “앞으로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구축된 시스템 안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하루빨리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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