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뭐 먹고 사나”…연기에 주민·인근 병원 환자도 호흡 곤란
“멍하니 하늘만 바라봅니다. 집에 돌아가도 다시 시장에 나오고 싶고,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은 없고….”대구 서문시장 1·4지구 화재로 8평 가게를 잃은 전모(62·여)씨는 이웃 상인과 이렇게 대화를 나눴다.
30일 오전 10시께 대구 서문시장 일대는 잿빛 연기로 가득 차 숨쉬기가 곤란했다.
오전 2시 8분께 서문시장 4지구에 난 불이 8시간이 지나도록 꺼지지 않자 낙담한 상인들은 수화기를 붙잡고 “다 탔다. 끝났다”는 말만 뱉어냈다.
나이 많은 상인들은 철제 벽이나 기둥에 기대어 자녀들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놀란 가슴을 쓸었다.
이불집을 하는 한 60대 여성은 ‘모두 탔다. 엄마는 괜찮다’고 딸에게 답장을 보냈지만,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낙심한 건 피해를 본 상인만이 아니다.
주민 김희숙(60·여)씨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되어서 나와봤다”며 “1975년에도 4지구가 불이 난 걸 봤는데 이번이 불길이 훨씬 커 보인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 봉사단 50여 명은 서문시장 남편과 북편에서 생수, 컵라면 등 먹을거리를 준비하며 상인들을 다독였다.
5분 간격으로 헬기가 지나가면 상인은 일제히 연기가 치솟는 하늘을 쳐다봤다.
검은 연기는 3㎞ 떨어진 수성교 일대에서도 보였다.
서문시장 맞은편 동산병원 방문객도 걱정했다.
한 환자 보호자는 “연기가 이렇게 몇 시간 째 넘어오는 데 병실이 안전한 것인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서문시장역에 도시철도공사 관계자 15명이 산소통을 매고 등장하자 상인들은 격려의 박수를 치기도 했다.·
서문시장 화재는 잊을 만하면 나곤 한다.
2005년 2지구 화재를 지켜봤던 상인 이수유(65)씨는 “소방시설을 한번 설치하고 더는 관리를 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더라도 노후해 불을 잡기에 역부족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와 불길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려고 사람이 몰려들어 현장은 어수선했다. 서로 두 손을 마주 잡거나 끌어안은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질서는 유지됐다. 무단횡단을 하거나 소방 질서선을 몰래 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상인들은 자녀에게 전화하며 눈시울을 붉히거나 한숨을 쉬었다.
한두 시간이 지나자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헛웃음을 지으며 “보험이나 보상이 문제가 아니다”며 “이제 어디서 뭘 먹고 살아야 하느냐”고 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