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 잡는 사이버 수사… 발목 잡는 아날로그 제도

거물 잡는 사이버 수사… 발목 잡는 아날로그 제도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18-05-29 22:52
업데이트 2018-05-3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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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토끼 운영자 검거 등 성과에도 전문 인력은 일반 요원 4분의1

클릭 한 번에 증거 인멸 가능
인권침해 우려·법적 권한 없어
증거 분석·추적 시간 장기화도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피팅모델 촬영 빙자 성추행 사건, 불법 웹툰 유통 등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의 상당수가 사이버상에서 이뤄지면서 경찰의 사이버 수사력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사이버 수사는 일반 수사보다 전문성이 요구되고 증거인멸, 인권침해, 추적 시간 장기화로 난관에 처할 가능성도 크다. 초기부터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부실 수사’, ‘늑장 수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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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사이버 수사 인력은 1449명이다. 1997년 경찰청 형사국에 사이버범죄수사대의 전신인 컴퓨터범죄수사대가 만들어진 뒤 꾸준히 인력이 충원됐지만 일반 수사 요원(6040명)의 4분의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수사 트렌드가 시대 변화에 맞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에 비해 인력 운용 방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사이버 범죄는 증거가 디지털 형태로 남기 때문에 증거 확보가 다소 용이한 측면이 있다. 피팅모델 사건에서 경찰이 범죄 혐의 적용을 위해 성추행보다는 사진 유출 수사에 더 초점을 두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클릭’ 한 번에 증거를 인멸 또는 변조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난 18일 구속된 불법 웹툰 유통 사이트인 ‘밤토끼’ 운영자도 2016년부터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하면서 증거 인멸을 위해 서버 위치와 사이트 주소를 수시로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운영자를 검거하지 못했으면 관련 증거 확보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 진행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이 높고, 확보한 증거를 분석하고 연관된 증거를 추적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도 속도가 ‘생명’인 사이버 수사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드루킹 사건의 경우 댓글 조작의 핵심 증거로 꼽히는 자동화 프로그램 ‘킹크랩’이 저장된 서버가 해외에 있는 점이 수사 진행을 늦추는 원인으로 꼽힌다. 명예훼손 댓글 작성, 불법 촬영(몰카) 영상 유포 등도 대부분 해외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국제 사법 공조가 필요하지만 외국에서는 해당 행위가 범죄가 아닌 경우도 있어 어려움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명예훼손을 형사가 아닌 민사로 해결한다. 국내 사법부가 발부한 영장이 해외에서는 강제력이 없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사이버 범죄 조약인 ‘부다페스트 협약’에 가입하면 미국, 일본 등 회원국들과 사법 공조 없이도 VPN 정보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감청 등을 금지한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는 가입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반 범죄와 사이버 범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만큼 경찰도 수사 경계를 넘는 협업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강력·폭력·마약 사건, 지능범죄·공공범죄·경제범죄 사건, 사이버 사건 등의 전통적인 구분을 떠나 서로 협업하거나 수사국 아래 사이버 분과를 두는 방식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2018-05-3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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