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말리는 상사와 술자리 직후 사고사…법원 “업무상 재해”

퇴사 말리는 상사와 술자리 직후 사고사…법원 “업무상 재해”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입력 2020-01-27 11:23
수정 2020-01-2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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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의사 철회 위한 인사관리 등에 관련된 것”

퇴직 의사를 밝힌 근로자가 이를 철회하도록 설득하는 상사와 술자리를 갖던 도중 사고로 숨졌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해당 술자리의 성격이 근로자의 퇴직 의사를 철회하기 위한 인사관리 등 업무의 연속이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함상훈 수석부장판사)는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등을 지급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홀 매니저로 근무하던 A씨는 2017년 11월 26일 영업을 마무리하던 중 상급자인 B씨로부터 일과 관련한 지적을 받았다. 당시 음식점의 전체 관리자와 지배인이 출근하지 않아 B씨가 전체 직원 중 최선임이었다.

B씨에게 지적을 받고 화가 난 A씨는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겠다”며 퇴직 의사를 밝혔다.
이에 B씨는 퇴근하면서 A씨에게 ‘술 한잔하자’고 권유했다. 두 사람은 함께 음식점 문을 닫은 뒤 바로 옆의 술집으로 이동했다.

술을 마시는 동안 오해를 푼 B씨가 사과의 뜻을 밝혔고, A씨도 퇴직 의사를 철회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술자리를 파하고 귀가하려고 술집을 나서는 과정에서 A씨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A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공단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공단은 “이 음식점의 전체 근로자 35명 중 2명만 자발적으로 가진 술자리이고, 회사가 술자리 비용을 변제한 것도 아니므로 업무의 연속 선상에 있는 공식적 행사로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유족이 낸 소송에서 재판부는 “A씨는 업무를 준비·마무리하거나 업무에 따르는 필요적 부수 행위를 하던 중 재해로 사망한 것”이라며 공단의 결론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B씨의 제안에 따라 이뤄진 술자리에서의 대화는 퇴직 의사 철회를 위한 인사관리 등에 관련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B씨의 행위를 계기로 A씨가 퇴직 의사를 밝혔으므로, B씨는 A씨에게 사과하고 A씨의 퇴직 의사를 철회시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목적에서 술자리를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A씨가 실제로 퇴직할 경우 다음날 음식점의 문을 열 사람이 없었다는 점도 설득을 위한 술자리와 업무의 관련성을 인정할 요소라고 재판부는 인정했다.

또 A씨와 그의 상급자인 B씨가 도보로 1분 거리의 술집에서 1시간 가량 소주 2병을 마시며 퇴직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눈 점 등도 고려하면 이 자리는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퇴직 철회 등 업무의 목적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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