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와 폭력성의 상관관계는?… 최근 두 논문 엇갈린 연구결과 발표

TV와 폭력성의 상관관계는?… 최근 두 논문 엇갈린 연구결과 발표

입력 2013-02-26 00:00
업데이트 2013-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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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시청하면 범죄적 성향 커져” “좋은 내용이면 사회적 능력 향상”

2011년 12월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을 계기로 학교폭력이 또다시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왕따’와 ‘언어폭력’, ‘카카오톡 감옥’ 등이 차례로 도마에 오르더니 어느 순간 ‘인터넷 게임’이 학교폭력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인터넷 게임을 많이 한 아이들의 뇌가 폭력적으로 변하고, 잔인함에 무감각해지며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는 연구결과들이 잇따랐다. 게임업계와 일부 학자들이 “검증되지 않은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라고 반발하면서 논란이 불붙었다. ‘인터넷 게임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TV의 폭력성’이다. 1960년대 이후 TV가 시청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은 물론이고 사회학, 정신분석학, 뇌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두루 연구과제로 다뤄졌다.

얼핏 생각하기에 ‘사람은 자주 보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상식대로라면 주먹과 총이 난무하는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이고 범죄현장과 수법을 보여주는 뉴스까지 TV는 유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세기 넘게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는 ‘TV와 폭력성’이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결과가 계속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TV 시청 자체가 폭력성을 키운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TV 자체는 문제가 없고 일부 프로그램만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TV가 오히려 교육에 도움이 되는 만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학자들도 많다. 한쪽에서는 TV를 근거로 게임의 폭력성을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TV를 근거로 게임이 폭력성의 주범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모순된 상황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TV의 폭력성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아과학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 국제저널에 실린 두 편의 연구결과 때문이다. 한쪽은 TV 시청의 ‘양’(量)에, 다른 한쪽은 TV 시청의 ‘질’(質)에 초점을 맞췄다.

TV에 유죄 선고를 내린 학자들은 뉴질랜드 연구팀이다. 지금까지 ‘TV=폭력성’이라고 주장해온 쪽에서 발표한 수많은 연구 중에서도 가장 강도가 높은 수준이다. 이들은 ‘소아과학회지’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통해 “TV 시청 시간과 범죄적 행동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30년에 걸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오랫동안 진행된 실험의 결과는 의외로 간단했다. 어린이나 청소년기에 TV를 자주 본 아이들은 성인이 됐을 때 범죄적 행동이나 반(反)사회적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1972년과 1973년에 뉴질랜드 남섬 더니든에서 태어난 1037명의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했다. 이들이 5세부터 15세가 될 때까지 2년마다 TV를 얼마나 보는지 조사한 뒤 TV 시청 시간과 범죄적 행동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아이들이 주말 밤에 TV를 시청하면서 보낸 시간이 한 시간씩 늘어날 때마다 성인 초반기에 범죄적 행위를 할 위험이 무려 30%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어렸을 때 TV를 자주 보는 것 자체가 어른이 됐을 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상관관계도 찾아냈다.

연구를 주도한 린지 로버트슨 더니든대 교수는 “장기간에 걸쳐 이들을 추적하면서 TV 시청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지위, 어렸을 때의 공격적이거나 반사회적인 행동 여부, 가정교육 등 요소를 감안했지만 그 어떤 것도 TV 시청만큼 폭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면서 “TV를 아예 못 보게 할 수는 없지만 시청 시간을 줄이는 것이 반사회적 행동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소아과학회는 “아이들이 TV를 하루에 1~2시간 이상 보지 못 하도록 하는 데 실패한 대부분의 부모들에게는 비통한 소식”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경우 취학 전 아동의 TV 시청시간이 집과 유아원 등을 합쳐 하루 평균 4.4시간에 이른다.

그렇다면 TV의 유죄는 확정된 것일까. 같은 저널에 나란히 실린 논문에서 미국 보스턴아동병원의 클레어 매카시 교수는 시애틀아동연구소, 워싱턴대 연구팀과 함께 궁지에 몰린 TV의 변호인으로 나섰다. 이들은 TV가 곧 폭력이라는 전제 대신, TV의 역할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3~5세 아이가 있는 565쌍의 부모를 2개 그룹(대조군·실험군)으로 나눴다. 두 그룹 모두 아이들의 TV 시청시간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다만 실험군에 있는 부모들에게는 다른 사람을 돕거나 폭력 없이 갈등을 해결하고 공감을 보여주는 내용의 TV 프로그램 비중을 더 높였다. 또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TV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스스로 TV 속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물어보도록 했다. 불과 6개월 만에 두 그룹 아이들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뽀뽀뽀’쯤 되는 ‘세서미 스트리트’ 스타일의 TV 프로그램을 많이 본 실험군 아이들은 대조군보다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공격성이 줄었고, 사회적 능력은 더 나아졌다.

12개월 후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매카시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TV나 스마트폰, 스트리밍 서비스 등의 사용시간을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면서 “그렇다면 TV를 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여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논문을 두고 주요 외신의 인터넷 게시판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현재 분위기로는 TV가 유죄를 받을 확률이 높다. 미국 LA타임스가 두 논문을 소개하고 ‘TV 시청은 반사회적인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가’라고 묻자 61%가 ‘그렇다’고 답했다.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대대적인 실험도 현재 진행되고 있다. 지난 1월 1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폭력적인 내용을 담은 게임이 실제 폭력적인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도록 지시했다. 질병통제센터가 담당하는 이 연구에는 1000만 달러(약 110억원)가 투입된다. “무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폭력적인 사건이 유행하는 상황에서 과학적 근거를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논리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2013-02-2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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