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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PR 입단 임박한 ‘캡틴’ 박지성이 걸어온 길

QPR 입단 임박한 ‘캡틴’ 박지성이 걸어온 길

입력 2012-07-08 00:00
업데이트 2012-07-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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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박지성(31)이 7시즌 동안 정들었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유니폼을 벗고 새로운 둥지인 퀸스파크레인저스(QPR)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2005년 7월 맨유에 입단하면서 ‘한국인 1호 프리미어리거’로 한국 축구사에 이름을 남긴 박지성은 2011-2012시즌까지 7시즌 동안 지치지 않는 체력을 앞세워 205경기에 출전해 27골을 터트렸다.

성실한 플레이와 좌우 측면은 물론 중앙 미드필더까지 소화하는 박지성의 능력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믿을맨’으로 입지를 굳혔지만 지난 시즌부터 출전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서 결국 ‘이적 카드’를 선택했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어린 시절 박지성은 왜소한 체구 때문에 축구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세류초등학교 6학년 때 한해 동안 가장 빼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에게 주는 ‘차범근 축구상’(5회)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수원공고를 졸업할 때까지 눈길을 주는 대학팀조차 없었다.

하지만 당시 수원공고를 이끌던 이학종 감독의 추천으로 1999년 명지대에 입학한 뒤 박지성의 축구인생은 180도 변하기 시작했다.

박지성은 대학 1학년 때인 1999년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올림픽대표팀과의 몇 차례 연습경기 나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는 행운을 누렸다.

이를 발판으로 박지성은 2000년 국내 K리그가 아닌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로 진출했다.

박지성의 기량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다.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린 박지성은 축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어 그해 J2리그(2부)의 교토퍼플상가를 1부리그로 끌어올린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03년 초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 입단해 빅리그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고, 2년 6개월 만인 2005년 7월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시련도 있었다.

2003년 에인트호벤(네덜란드) 시절 오른쪽 무릎의 반월형 연골판 제거 수술을 받았던 박지성은 2007년 4월 오른쪽 무릎 연골 재생 수술을 받고 9개월의 힘겨운 재활을 견뎌냈다.

결국 박지성은 소속팀 경기에 더 집중하겠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 1월 아시안컵을 끝내고 난뒤 11년 동안 정들었던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맨유 경기에 더욱 집중한 박지성은 지난 2월 6일 맨유 입단 6년 7개월 만에 200경기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맨유의 전설’ 대열에 낄 수 있었다.

맨유가 1878년 창단한 이후 134년 동안 개인통산 200경기 이상을 뛴 선수는 박지성을 포함해 92명뿐이었다.

200경기 출전에 성공한 박지성은 당당하게 300경기 출전을 기약했지만 QPR 이적이 임박해지면서 뜻을 이루기 어렵게 됐다. 이에 따라 박지성이 맨유에서 남긴 기록은 통산 205경기(27골)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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