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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월드컵] 험난했던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브라질월드컵] 험난했던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입력 2013-06-19 00:00
업데이트 201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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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가 2014 브라질 월드컵으로 가는 지역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서 세계의 높은 벽에 도전하게 됐다.

어느덧 아홉 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이다.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로는 8회 연속 본선 무대를 밟게 됐다.

이제는 본선행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번 최종예선에서 대표팀이 축구팬들의 전례 없는 거센 비난을 받은 것도 한국이 월드컵 본선 ‘단골 손님’이 되면서 눈높이가 한껏 올라간 탓이 컸다.

◇ 우여곡절 끝 브라질行 확정

대한축구협회는 2010년 7월 21일 조광래 전 감독에게 사령탑을 맡기며 본격적인 브라질 월드컵 준비를 시작했다.

안양LG와 경남FC 감독을 맡으며 유망주 발굴에 능한 지도자로 명성을 쌓은 그였기에 대표팀의 ‘중장기 비전’을 수립할 적임자로 기대를 모았다.

조광래호(號)는 8월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순항을 시작했다.

우승을 목표로 나선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는 3위에 그쳤지만 강력한 압박과 세밀하고 빠른 패스 플레이를 앞세운 ‘조광래식 축구’의 가능성은 인정받았다.

그러나 2011년 8월 일본과의 원정 친선전에서 0-3 완패를 당하면서 조광래호의 난항은 시작됐다.

9월부터 시작된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에서 무리하게 해외파 선수들을 주전으로 기용해 구설에 올랐고 아시안컵에서 마치 톱니바퀴같았던 조직력은 점차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운명의 11월 16일 베이루트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3차 예선 5차전.

한국은 전술과 경기력에서 모두 밀리며 1-2 패배를 맛봤다. 국민이 받은 충격은 가히 ‘레바논 쇼크’라 부를 만 했다. 마지막 쿠웨이트와의 6차전에서 패배하면 탈락할 위기에 처했다. 한국 축구가 이제껏 맛보지 못한 ‘굴욕’이었다.

거센 비난 여론이 일었고 결국 조 전 감독은 3차 예선을 마치기도 전에 해임 통보를 받았다.

프로축구 전북 현대를 이끌던 최강희 감독이 긴급 투입됐다. 최 감독은 축구협회의 제의를 수차례 고사했지만 끈질긴 설득에 결국 감독직을 수락했다.

최 감독은 최종예선까지만 사령탑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인, 세계 축구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시한부 감독’이었다.

최강희호는 최종예선 첫 경기에서 카타르에 4-1 대승을, 레바논과의 2차전에서는 3-0 낙승을 거두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경기에서 2-2 무승부에 그치고 4차전 이란 원정에서는 0-1로 패하며 A조 2위로 내려앉았다.

이어진 호주와의 평가전에서도 1-2로 무릎을 꿇으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본선 진출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올해 3월 26일 치른 카타르와의 5차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후반 연장시간 손흥민의 골로 2-1 신승을 거두자 최 감독을 향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대표팀은 몇 수 아래로 여겨졌던 레바논과의 원정 경기를 분위기 반전의 기회로 삼으려 했지만 빈약한 골 결정력과 허술한 수비는 계속됐다.

전반 이른 시간 선제골을 빼앗기며 경기 내내 끌려다닌 끝에 김치우의 프리킥 골로 1-1 무승부를 거두는 데 그쳤다.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는 무승부였다.

벼랑 끝에 몰린 대표팀은 본선 진출의 분수령이 된 지난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홈 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자책골에 힘입어 승점 3을 확보, 조 1위를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한국은 마지막 이란과의 경기에서 0-1로 패배했지만 우즈베키스탄에 골득실에서 앞서 조 2위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최종예선 마지막 4경기에서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전 자책골을 제외하고 총 3골을 넣었다. 경기당 1골도 넣지 못한 빈약한 골 결정력은 한국의 발목을 끝까지 붙잡았다.

역대 가장 ‘찝찝한’ 기분으로 마무리지은 최종예선이었다.

◇ 1954년 스위스부터 2010년 남아공까지…쉽지만은 않았던 역대 최종예선

돌이켜보면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항상 쉽게 이뤄진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도전장을 처음 내민 것은 1954년 스위스 대회에서였다. 한국과 일본만 예선에 참가했다.

당초 홈 앤드 어웨이로 치러질 경기였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대표팀 입국을 불허하면서 두 경기를 모두 적진에서 치르는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한국은 예상을 깨고 첫 경기를 5-1 승리로 장식했고 1승 1무를 거두며 스위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후 1982년 스페인 대회까지 한국은 번번이 예선에서 실패를 맛봤다. 1966년 잉글랜드 대회 때는 강팀 북한의 참가 소식에 지레 겁을 먹고 출전 자체를 포기하기도 했다.

1986년 멕시코,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최종예선은 비교적 쉽게 통과했지만 1994년 대회 때는 ‘도하의 기적’을 연출하며 가까스로 미국땅을 밟았다.

당시 최종예선은 카타르 도하에 한데 모여 치렀다. 조 3위에 머물러 본선행 전망이 어두웠던 한국은 최종전에서 북한을 3-0으로 꺾었다. 같은 시간 일본은 경기 종료 직전 이라크에 통한의 동점골을 내주며 2-2로 비겼다.

한국은 일본과 같은 승점을 기록했지만 골득실에서 앞서며 극적으로 조 2위를 확보, 1위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본선에 진출했다.

차범근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었던 1998년 대회 최종예선에서는 6승 1무 1패라는 호성적으로 프랑스행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아찔했던 순간은 있었다. 최대 고비였던 3차전 일본과의 원정 경기에서 한국은 경기 막판까지 0-1로 수세에 몰렸다.

후반 38분이 돼서야 서정원(현 수원 삼성 감독)이 헤딩 동점골을 넣었다. 3분 뒤 이민성(현 전남 드래곤즈 코치)이 때린 강력한 중거리포가 골로 연결돼 2-1 역전승을 거뒀고 이 경기는 ‘도쿄 대첩’으로 불리게 됐다.

2006년 독일 대회는 ‘히딩크 신화’의 부담 탓에 예선 준비부터 쉽지 않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자만심에 빠져 아시안컵 2차예선 원정 경기에서 오만에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대표팀은 월드컵 2차예선에서도 아시아 최약체 몰디브와 0-0 치욕적인 무승부를 기록했다.

포르투갈의 명장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은 14개월간의 짧은 재임기간 두번이나 졸전 쇼크를 경험하며 불명예 하차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지휘봉을 이어받아 본선행을 이뤄냈지만 그 역시 거셌던 대표팀 비난 여론을 이겨내지 못하고 짐을 싸야 했다.

4승 4무 무패라는 역대 최고 성적으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 본선에 진출한 허정무호(號)에도 부침은 있었다.

3차예선에서 북한과 두 차례 맞대결을 0-0으로 비기고, 약체 요르단과 홈 경기에서도 2-2로 무승부를 거두며 불안감을 안겨줬다.

최종예선에 올라서도 1차전 원정 경기에서 북한에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비난은 극에 달했다.

위기에 빠진 허정무 감독은 지속적인 세대교체로 돌파구를 찾았다. 현재 대표팀의 주축이 된 이근호와 기성용 등 ‘젊은 피’를 수혈해 결국 대성공을 거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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