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나, 그는 축구의 神인가 괴짜인가

마라도나, 그는 축구의 神인가 괴짜인가

입력 2010-06-23 00:00
업데이트 2010-06-2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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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엇갈릴 수 있을까. 누군가에겐 신이지만 다른 이에겐 조롱거리일 뿐이다.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감독 디에고 마라도나. 찬사와 저주로 뒤범벅된 인생을 살고 있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도 비슷하다. 기행의 연속이다. 자동차로 기자를 치고 공개훈련에선 선수 대신 프리킥을 찬다. “펠레는 박물관에나 가야 한다.”, “한국은 애초에 아르헨티나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등 거침없는 입담도 여전하다. 사람들은 그런 마라도나에게 열광하거나 불편해한다. 무엇이 진짜일까. 우리는 마라도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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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빈민가 출신… 16살 프로무대 데뷔

마라도나는 196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다른 빈민가 아이들처럼 축구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재능이 있었다. 16살 어린 나이에 프로선수로 데뷔했다. 마라도나가 택한 팀은 보카주니어스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부두노동자들이 만든 클럽이다. 하층민과 가난한 자들의 상징이다. 반대편에는 리버플레이트가 있었다. 중산층과 부자의 팀이다. 마라도나는 빈민가 출신인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았다. 그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마라도나의 전성기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 우승 당시였다. 잉글랜드와 8강전이 하이라이트였다. 유명한 ‘신의 손’ 사건이 있었다. 마라도나는 “내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 골을 넣었다.”고 했다. 딱 10분 뒤 마라도나는 정말 축구의 신으로 변했다. 50여m를 단독 드리블해 수비수 5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열광했다. 잉글랜드에 포틀랜드를 뺏긴 울분을 축구로 풀었다. 마라도나는 약자 아르헨티나의 상징이었다.

이탈리아에 진출해서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북부의 부유한 클럽 AC 밀란-인테르 밀란-유벤투스를 거부하고 가난한 남부 클럽 나폴리를 선택했다. 반골기질은 천성이었다. 나폴리는 마라도나가 뛰던 1987년과 1990년 이탈리아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마라도나의 축구인생은 약자-빈민-노동자와 함께 얽히고 설켜 있다.

●94년 美월드컵 당시 중도하차… 교황에 욕설 퍼붓기도

선수 생활이 끝난 뒤엔 내리막이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약물 복용으로 중도 하차했다. 교황에게 욕설을 퍼붓고 기자들에게 공기총을 난사했다. 2004년 보카주니어스 경기를 보다 약물 후유증으로 실신하기도 했다. 언론은 그를 기인으로 묘사했다. 의미없고 기이한 행동을 반복하는 반미치광이로 여겼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마라도나는 2005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반대하는 시위 선봉에 나섰다. 빈민층과 약자를 대변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을 조롱하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추앙했다. 왼팔에는 카스트로에 대한 찬양 문구를, 오른쪽 팔에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얼굴을 새겼다. 완연한 혁명가의 면모다.

그는 분명히 괴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특이한 천재다. 그러나 그런 모습으로만 마라도나를 규정할 순 없다. 마라도나는 신과 기인 사이의 어느 지점에 미묘하게 서 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2010-06-2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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