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뛰는데 제품값 못올리고

원자재값 뛰는데 제품값 못올리고

입력 2011-02-20 00:00
업데이트 2011-02-20 15:4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최근 원유와 철광석,곡물 등 원자재의 국제 가격이 급등하면서 산업계 전반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물가 안정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가격 인상을 자제토록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어 원가 상승분을 제품값에 얹지도 못해 양쪽에서 짓눌리는 ‘샌드위치’ 신세가 된 기업들은 하루하루 원가 절감을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 “마른 수건도 다시 짜라”=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각종 물가 인상을 우려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업체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완성품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공정 효율화 등을 통한 원가 절감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이 곧바로 원가 부담으로 이어지는 정유업계는 최근의 가격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에너지는 원유 구매처 다변화,석유개발 사업 강화를 통한 지분 원유 확보 등의 계획을 세우는 한편 울산공장 인근 기업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연료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수립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탁기 제품 포장재를 기존 종이 상자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필름 형태의 ‘수축포장 방식’으로 바꿨다.

 수축포장이란 저밀도폴리에틸렌(LDPE) 필름을 사용해 제품과 포장재를 압착·고정하는 새로운 포장방식으로,종이 상자에 사용되던 펄프 가격이 폭등하자 특별 대책으로 고안된 방식이다.

 수축포장은 현재 유럽에 수출하는 드럼세탁기에 적용 중이며 다른 가전제품에도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풀무원은 위생복과 비품,장비 등을 구매하면서 각 계열사 물량을 모아 통합구매하는 방식으로 30%가량 비용을 절약하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항공기 탑재 카트를 27㎏에서 20㎏으로 줄이는 작업을 마무리하는 한편 스타얼라이언스 회원사와 항공유 공동구매량을 늘리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 “아이디어 모아라” 사원들도 ‘비상’=사원들 역시 근무시간을 늘리거나 아이디어를 짜내려 머리를 맞대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포스코는 최근 사원들을 대상으로 원가절감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었다.

 금융비용 절감,에너지 효율 향상,프로세스 혁신 등 전체 업무영역에 걸쳐 사원들의 아이디어를 받았으며 심사를 거쳐 최우수 아이디어를 낸 사원에게 500만원의 상금을 주는 등 포상을 통해 직원들을 격려할 방침이다.

 CJ제일제당은 국제 곡물 시세가 고공행진을 계속하자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했다.

 구매팀 직원들은 값이 조금이라도 떨어졌을 때 원료를 구매하기 위해 평일 출근 시간을 1시간 앞당긴 것은 물론 주말에도 관련 업무에 매달리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최근 상황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위기 극복을 위해 직원 모두 긴장감을 높여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 역시 회사 안팎의 힘을 모으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신차 개발 초기부터 출시 직전까지 협력업체나 외부 엔지니어를 적극 참여시켜 개발기간 단축과 비용 절약을 위한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고,GM대우도 직원이 참여하는 제안제도를 활성화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 ‘출구 없는 제로섬’…업체 간 갈등 깊어지기도=이런 노력에도 일부 업계에서는 원자재 가격 급등에 대한 부담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업체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원가절감 등으로 상쇄하지 못하면 결국 업체들끼리 부담을 나눠서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업계는 건설업체와 철강업체가 철근 가격을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에 따르면 철강업체들은 지난해 12월 t당 76만원이었던 고강도 철근의 가격을 1월 81만원,2월 86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자재협회는 1월 79만원,2월 81만원의 인상안을 제시했지만,철강업체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이정훈 협회장은 “공사 비수기인 1,2월부터 이렇게 가격을 올리면 성수기인 3월에는 얼마나 더 오를지 모른다”면서 “정부가 물가 단속에 나섰다는데 철강업체들은 끄떡도 않고 있다”고 반발했다.

 주택 등 건설 경기 불황으로 가뜩이나 경영난을 겪는 건설업체들은 현재 가격 협상을 주장하며 이미 사용한 철근 값의 지급 거부로 맞서는 한편,t당 가격이 3만∼4만원 저렴한 중국과 터키 등지에서 철근을 공동구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철근을 덜 쓰면 부실 공사가 되기 때문에 값이 오른다고 물량을 줄일 수는 없다”면서 “철강업체와 협상하는 한편 가격이 저렴한 수입 철근 사용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중소기업은 원자재 가격 상승의 부담이 고스란히 납품단가 인하에 대한 압력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호소한다.

 충북 청원에서 기계부품공장을 운영하는 김모(44)씨는 “생산 비용은 계속 늘어나는데 납품가격은 원자재 가격이 오르기 전 수준이나 그 이하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대기업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답답할 따름”이라고 털어놨다.

 경기 안양의 철구조물 제조공장 관계자 역시 “대기업이나 다른 협력사에서는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전혀 반영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중국이나 대만 등 외국 공장과 비교해가며 단가를 낮추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원가 절감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실제로는 원자재 값 인상으로 말미암은 부담을 모두 중소업체에 떠넘기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물가 안정 정책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이로 인해 납품단가 인하 요구가 이어진다면 중소기업의 경영은 어려워 질 수 밖에 없다”며 “진정한 동반성장을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