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재계 유리천장 깨기’ 기폭제 될까

이건희 회장 ‘재계 유리천장 깨기’ 기폭제 될까

입력 2011-08-29 00:00
업데이트 2011-08-2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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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여성 조직문화ㆍ제도 도입엔 CEO 결단 필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여성의 기업 고위직 진출을 독려했다. 지난 23일 그룹 여성 임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여성도 사장이 되면 뜻과 역량을 다 펼칠 수 있으니 사장까지 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 발언을 계기로 국내 기업에서 아직도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덕에 유리천장이 하나 둘 사라지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유리천장은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것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리천장을 없애려면 남성 중심적인 기업 제도와 문화가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게 여성계의 중론이다.

이 때문에 여성계는 이건희 회장의 최근 발언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재계에 막대한 영향력이 있는 이 회장이 연말 인사에서 모종의 조치를 취한다면 여성 배려 분위기가 다른 기업으로 급속히 확산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 그릇된 관행 개선엔 경영진 의지가 중요

29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국내 기업의 여성 임원은 7.4%, 여성 대표는 2.1%에 불과했다.

여성 비율은 관리직을 통틀어 평균 26.0%였으나 직급이 높아질수록 눈에 띄게 줄었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은 남성 중심적 조직문화와 출산ㆍ육아의 부담 등 한둘이 아니다. 모두 여성에게는 뚫기 어려운 유리천장이다.

남성 중심적 조직문화란 출산ㆍ육아휴직을 신청할 때 마치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남의 눈치를 봐야 하거나 집안일로 주중에 휴가를 내기 어려운 분위기 등을 가리킨다.

정시 퇴근이나 근무 후 회식에 불참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문화를 여성 친화적으로 바꾸려면 기업을 이끄는 경영진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성신여대 복지학과 김태현 교수는 “남성 중심적 문화를 개선하려면 최고경영자(CEO)의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 CEO가 여성을 위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갖추고 조직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출산ㆍ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려면 직장에 머무르는 시간과는 상관없이 성과 위주로 평가하는 업무 중심의 근무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근로자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신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 결과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시차출퇴근제를 도입한 기업은 15.6%에 불과했다. 재택 근무제를 시행하는 기업도 7.0%에 그쳤다. 유연근무제는 아직 국내 기업에서 초보 수준인 셈이다.

여성의 출산ㆍ육아 부담을 덜어주려면 가정을 여성만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통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충고도 나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택문 연구위원은 “남성은 가정을 포기하더라도 직장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여성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남성과 여성이 직장인과 부모의 권리를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국가 강제보다 기업 자발적 변화가 바람직

유리천장을 깨뜨리는 데 국가가 앞장서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 기업 임원의 일정 비율 이상을 여성에 할당하도록 강제한 것이 모범 사례다.

노르웨이에서는 2003년 기업 임원의 40% 이상을 여성으로 두도록 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 5월 기준 노르웨이 주요 대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39.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페인도 이와 유사한 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프랑스 의회도 올해 초 대기업 임원의 최소 4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벨기에는 국유기업과 공기업 임원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지난달 의회를 통과했다.

이런 쿼터제는 기업의 인력 운용에 대한 국가의 간섭으로,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영국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여성 임원 쿼터제는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방해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한 해법”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건희 회장의 최근 발언이 주목된다. 당장 연말 인사에서 여성을 요직에 대거 발탁한다면 여풍(女風)은 다른 기업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삼성이 재계의 유리천장을 깨뜨리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여성 인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온 이 회장은 단순히 형평성을 기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유리천장을 제거하는 노력을 보일 것으로 여성계는 기대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종숙 연구위원은 “과거 국내 여성 근로자 비율이 늘어난 것은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여성 인력 채용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 회장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제도적 개선 없이 몇몇 여성을 고위직에 앉히는 상징적인 조치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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