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한 금융회사..”치료도 받지마”

해도 너무한 금융회사..”치료도 받지마”

입력 2011-09-05 00:00
업데이트 2011-09-0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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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못갚자 마구잡이 채권추심..암환자 암보험료까지4년간 1천200만원 넣은 보험 해지시켜 50만원 회수

최모(56)씨는 지난 5월 신용카드사에서 보낸 우편물을 받고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카드사는 최씨가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최씨가 아내와 아들 앞으로 가입한 보험까지 모두 압류, 강제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최씨는 “개인사업이 실패한 충격으로 아내는 심장병에 걸렸고 아들은 6년 전 장폐색증으로 수술을 받아 보험금으로 치료비를 충당하고 있다”며 “보험이 해지되면 아내와 아들은 치료도 못 받는다”고 금융감독원에 호소했다.

채무자, 특히 연체자에 대해 채권자인 금융회사는 그야말로 ‘갑(甲: 우월적 지위를 일컫는 표현)’이다. 월급을 차압당하든 적금을 깨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존 원리금에다 연체이자까지 갚아야 한다.

이 같은 ‘갑의 횡포’에 시달려 보험계약이 압류ㆍ해지된 최씨 같은 사례는 올해 무려 7만6천명이다. 생활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인 보험금마저 내줘야 한 경우는 지난해보다 2배로 늘었다.

◇‘인정사정 볼것없다’ 마구잡이 압류ㆍ해지

5일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보험계약 압류ㆍ해지는 채권추심이 가장 집요한 것으로 알려진 대부업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부업체들은 올해 보험계약이 압류ㆍ해지된 7만6천76명 가운데 4만646명(53.4%)의 해약환급금으로 채권을 회수했다. 카드사가 1만8천569명, 저축은행이 9천123명으로 뒤를 이었다.

압류ㆍ해지 보험의 절반가량은 상해ㆍ질병 치료비 등을 보장하는 보장성 보험으로 추정됐다. 중도 해지하면 해약환급금이 터무니없이 적고, 앞으로 아프거나 다쳐도 보험금을 받을 수 없어 타격이 크다.

물론 이들 금융회사도 할 말은 있다. 상대적으로 은행권에 비해 연체율이 높은 저신용자 대출이 많다 보니 이런저런 사정을 봐주다간 채권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경영실적이 급격히 악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러 금융회사에 빚을 진 다중채무자가 많아 다른 금융회사보다 한발 늦게 움직였다간 채권이 회수불능 상태가 될 우려가 커 보험계약까지 손을 대지 않을 수 없다고 항변했다.

한 대부업체의 채권추심 담당자는 “금융회사가 자선단체는 아니지 않느냐”며 “법과 절차에 따라 채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뿐이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지난 7월6일 개정 민사집행법령이 시행돼 앞으로는 보장성 보험에 대한 압류ㆍ해지가 금지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보험사들에 보장성 보험의 압류ㆍ해지 요청에 응하지 않도록 지도했다”며 “안타깝지만 최씨처럼 기존에 강제 해지된 경우까지 소급 적용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금지법’ 시행 직전 보험 압류ㆍ해지 급증

금융회사들은 보험계약 압류ㆍ해지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지난해 이후 분기별 추이를 보면 다소 궁색하다는 지적이다.

보장성 보험에 대한 압류ㆍ해지를 금지하는 관련 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하자 법 시행을 앞두고 각 금융회사가 보험계약 압류ㆍ해지를 부쩍 늘렸기 때문이다.

대부업체의 경우 지난해 1분기 6천875명에 불과했던 보험 압류ㆍ해지가 올해 2분기 2만4천152명으로 약 4배 급증했다. 카드사와 저축은행도 같은 기간 4천560명과 2천855명에서 9천201명과 4천471명으로 각각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가계부채 증가로 연체 규모가 덩달아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보장성 보험에 대한 압류ㆍ해지가 불가능해지기 전에 대출자의 보험계약을 대거 해지시킨 결과로 풀이된다.

금감원은 지난 7월6일 개정법이 시행되기 전 닷새 동안 2천373명의 보험계약이 압류ㆍ해지됐으며, 이는 7월 한 달 압류ㆍ해지된 4천522명의 52.5%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대출자의 세세한 보험가입 내역을 알지 못하는 금융회사들은 법원에 각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계약 압류를 신청, 마구잡이로 보험계약을 해지시켜 해약환급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에 민원을 낸 김모(28)씨는 “3년 전 선배 부탁으로 할부 구입에 명의만 빌려줬는데, 할부금융사가 어떻게 알았는지 내 보험을 압류해놨더라”며 “얼마 전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해 병원에 갔더니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몇만원 받으려고 압류..보험사 손익계산도 한몫

정모씨는 2006년 종신보험에 가입해 5년여 동안 꼬박꼬박 보험료를 냈지만, 빚을 갚지 못한다는 이유로 보험계약이 압류ㆍ해지됐다. 그동안 정씨가 낸 보험료는 1천170만원이었지만, 해약환급금은 50만원이었다.

카드업계 수위(首位) 업체인 S카드는 145만원이 납입된 강모씨의 암보험을 해지시켜 해약환급금 5만8천원을 챙겨갔다. 김모씨도 S카드에 진 ‘자투리 빚’ 3만7천원을 갚지 못해 1999년부터 유지해 온 암보험이 강제 해지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무리 빚을 갚지 못했다고 해도 보험계약이 강제로 해지되면 가입자의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불과 대출금 수만~수십만원을 회수하려고 몇년째 유지한 보험계약이 해지되는 건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보험계약이 대거 압류ㆍ해지되는 데는 앞으로 납부될 보험료와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비교하는 보험사의 손익 계산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보험료에 훨씬 못 미치는 해약환급금을 내어주고 남은 기간 보험료는 받지 못하는 대신 향후 보험사고 확률이 높은 가입자의 계약이 해지됨으로써 예상 손실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별 압류ㆍ해지를 보면 생보사 중 가장 많은 대한생명이 지난해 1분기 4천552건에서 올해 2분기 1만124건으로 늘었으며, 푸르덴셜생명은 118건에서 1천394건으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동양생명도 2천823건에서 8천95건으로 대폭 늘었다.

손보사 중에는 동부화재(897건→5천143건), 한화손보(179건→1천95건), 현대해상(635건→2천55건), 삼성화재(153건→471건) 등 대형 손보사에서 집중적으로 증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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