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주 행장의 뚝심

권선주 행장의 뚝심

입력 2014-07-16 00:00
업데이트 2014-07-16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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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 뒤로 하고 자신만의 색 반영 기업銀 인사 단행

머리를 푹 조아렸다. 하지만 시선을 완전히 내리깔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인다마는 진심으로 당신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무언(無言)의 메시지가 등에 와 꽂혔다. 권선주(58) 기업은행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얼마 뒤 수석 부행장을 발표했다. 조직이 술렁댔다. 예나 지금이나 국책은행 인사는 청탁이 극심하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이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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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 이상으로 엄청난 로비가 쇄도하자 권 행장도 당황했다. 외부에서 강하게 민 분은 능력이 탁월했다. 하지만 권 행장은 (조직 전반을 아우를) 수석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자신이 염두에 둔 분을 밀어붙였다. 솔직히 행장이 세상 물정 모르고 덤빈다고 생각했다. 인사가 지연되길래 그러면 그렇지 했다. 그런데 결국 관철시키더라.”

권 행장은 차분히 청와대를 설득했고, 뚝심은 통했다. 여성 행장을 내심 얕잡아 보던 계열사 사장단과 남성 임원들의 무릎이 절로 꺾이는 순간이었다.

권 행장이 15일 하반기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자신만의 색깔이 반영된 첫 본격 인사다. 일부 계열사 사장과 부행장 승진 인사는 청와대의 검증이 지연되면서 발표가 미뤄졌지만 “묵묵히 일하는 직원이 인정받고 대우받는 인사 관행을 정립시키겠다”던 취임 일성을 어느 정도 지켜 냈다는 평가다. 이번 인사의 키워드는 전문성과 영업력. 청와대 탓에 기업은행의 전통인 ‘원샷 인사’(임직원 인사 동시 단행)가 흔들린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래도 1800명 직원 인사를 더는 미루지 않고 한날 단행했다.

그가 지난해 말 행장이 됐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는 ‘코드(여성) 인사’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권 행장도 운이 따랐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당초 그에게 온 제의는 자회사 사장 자리였다. 고민 끝에 거절했다. 수석 부행장을 노려서였다. “자회사 사장은 따 놓은 당상이었고 수석 부행장은 불투명했다. 하지만 평생을 은행에 몸담은 이상 한번 도전이라도 해 봐야겠다 싶었다.” 이런 도전 정신이 없었으면 첫 여성 행장 기회는 아예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넘버2’가 목표였던 그가 어느 날 ‘넘버1’이 됐으니 주위의 시선이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권 행장은 대통령에게서 임명장을 받은 그날로 임원들을 전원 소집했다. “전임 행장은 인품이 너무 좋으셔서 3년 (임원) 임기를 보장했지만 나는 다르다. 모든 것은 성과로 평가하겠다. 그러니 업무에만 집중하라. 성과가 좋지 않으면 책임을 묻겠다.” 일괄 사표를 받겠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일성(一聲)이었다. 디테일에 약했던 조준희 전 행장과 달리 권 행장은 아침마다 수치 등을 들이댔다. 질문 공세도 뒤따랐다. 임원들이 딴짓할 시간도, 딴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 흐름에 따라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변해 갔다.

한 금융권 인사는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내부에서도 박한 평가를 얻었던 건 인사를 제대로 풀지 못했던 탓이 가장 크다”며 “권 행장이 (여성 행장에 대한 주위의 질시와 편견을 극복하고) 빠르게 조직을 장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인사에 있다”고 지적했다.

안미현 기자 hyun@seoul.co.kr
2014-07-1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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