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 백지화… 꼬이는 구조조정 정책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 백지화… 꼬이는 구조조정 정책

백민경 기자
백민경 기자
입력 2015-09-17 23:18
업데이트 2015-09-1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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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유암코 확대’ 은행권 건의 수용

새로운 기업 구조조정 모델을 만들겠다며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가 출범 두 달을 앞두고 백지화됐다. 대신 부실채권(NPL) 투자회사인 ‘유암코’가 그 기능을 맡는다. 구조조정보다는 수익성에 더 방점이 찍힌 민간회사에 ‘큰 그림’을 떠안긴 데다 투자금 규모도 당초 3조원에서 줄어들 수 있는 만큼 구조조정이 제대로 될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설 회사로는 당장 성과를 내기 어려워 매각을 코앞에 둔 유암코를 ‘재활용’하려 한다는 비판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17일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를 신설하는 애초의 금융위 방안 대신 유암코를 확대 개편하자는 은행권의 건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암코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증한 은행권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2009년 6개 은행(신한·하나·국민·기업·농협·우리)이 출자해 설립한 부실채권 처리 전문회사다. 자산 유동화와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맡고 있다. 최근 매각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였으나 정부의 ‘방향 선회’로 매각은 없던 일이 됐다. 이성규 유암코 사장은 외환위기 때 국내 기업 구조조정 실무를 도맡아 한 ‘구조조정 전문가’다.

이명순 금융위 구조개선정책관은 “신규 설립에 따른 시간이나 인력 채용 비용을 줄이고 유암코의 구조조정 인력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은행)건의를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회사를 새로 세우면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당장 이렇다 할 실적을 내기 어려워 정부가 금융권에 먼저 압박을 가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선 금융위는 유암코의 기능부터 확대할 계획이다. 최대한 구조조정 여력이 줄어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다음달 확대 개편안을 발표한다. 당초 구조조정 전문회사에는 신한·국민 등 8개 은행과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출자 1조원, 대출 2조원 등 최대 3조원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유암코에는 현재 1조원의 은행 출자약정 가운데 4860억원만 들어가 있는 상태다. 이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기존 주주인 6개 은행 지분을 일부 인수하는 방식으로 참여해 남은 5000억원을 2조원(잠정)까지 늘린다는 게 정부 복안이다.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부족하면 투자금 규모를 늘릴 수 있다고 금융위는 설명한다.

논란도 적잖다. 가뜩이나 대우조선해양·성동조선 등 자회사 부실로 허리가 휘는 산은과 수은의 부담을 더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익성만 중시하는 채권은행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의 취지가 빛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지난 11일 공청회까지 열어가며 발표한 사안을 불과 일주일 만에 뒤집은 것 자체가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면서 “구조조정을 빨리 진행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기업이 자생할 수 있게 시장 자율에 맡기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 자체가 꼬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조조정 업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기업구조조정촉진법 개정안 자체도 부처 간 엇박자로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어서다. 대법원 등은 아예 “(개정안이) 시장 자율성을 고려하는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고 워크아웃, 회생절차와 양립할 방안이 없다면 영구화가 아닌 한시법으로 다시 제정하는 게 낫다”며 반대의견을 내놓은 상태다. 애초에 민간 구조조정 회사 설립을 정부가 주도한 것부터 모순이라는 쓴소리도 있다. 박창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계속 지원하고 있는 상태에서 민간 전문회사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구조조정 시장 역시 하나의 독점 체제로 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2015-09-1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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