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영 공백에 M&A·신규투자도 사실상 ‘올스톱’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 수감된 지 오는 17일로 넉 달째가 되는 가운데 총수 부재 장기화에 따른 삼성의 ‘내상’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일상적 업무는 임원진을 중심으로 별 차질없이 진행하며 겉으로는 거대 글로벌리더 기업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총수가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결정해야 할 ‘미래전략’이 좌표를 잃으면서 가뜩이나 외국 후발기업들의 도전이 거센 상황에서 자칫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삼성 내부에 팽배하다.
실제로 이 부회장 구속 이후 글로벌경영 전선에 차질이 발생하고, 대규모 인수·합병(M&A)과 신규 투자는 전면 중단된 상태여서 글로벌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뒤처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다음 달 초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전세계 유력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앨런 앤드 컴퍼니 선밸리 콘퍼런스’(선밸리 콘퍼런스)가 개최될 예정이지만 이 부회장은 참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선밸리 콘퍼런스는 전세계 IT, 미디어 업계 경영자는 물론 정관계 거물들이 대거 집결하는 행사로, 이 부회장은 지난 2002년 이후 매년 참석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쌓아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 3월 중국 하이난에서 열린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인 ‘보아오 포럼’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포럼 이사 자격으로 참석해 왔기 때문에 삼성에서 대체할 수 있는 인물도 없었다.
같은 달 미국에서 열린 산업·금융계 최고경영자(CEO)모임인 ‘비즈니스 카운슬’에도 이 부회장은 불참했다. 이 부회장은 이 행사의 유일한 한국인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지난 4월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의 지주회사 엑소르 이사회 참석도 무산됐으며, 지난달에는 2012년부터 갖고 있던 사외이사직도 내놨다.
이건희 회장의 장기 와병에 겹쳐 이 부회장마저 구속수감되면서 삼성전자의 대규모 M&A와 신규 투자도 사실상 ‘올스톱’ 됐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전장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9조원에 인수한 이후 올해 들어서는 새로운 대형 M&A 발표가 단 한 건도 없었다.
3년전 경영 전면에 나선 이 부회장이 굵직굵직한 기업 인수와 지분 투자를 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나 완전히 손이 묶인 셈이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첨단제품 시장에서 국내외 경쟁사들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삼성은 과거 이 부회장이 결정했던 투자 계획을 집행하는 수준에 만족해야 하는 처지다.
약 15조원을 투자한 경기도 평택의 반도체 공장이 이미 완공돼 일부 라인에서 가동을 시작했지만 별도의 준공식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이 부회장의 공백 여파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반도체시장의 ‘수퍼 호황’ 덕분에 올 2분기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이 부회장 부재에 따른 차질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매년 6월 말 개최하는 상반기 글로벌전략회의를 오는 27~28일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해외 법인장과 사업부 임원 등 약 100명이 참석하는 이번 회의는 부문별로 디지털솔루션(DS) 부문의 권오현 부회장, 소비자가전(CE) 가전 부문 윤부근 사장, IT·모바일(IM) 부문 신종균 사장 등이 각각 주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의 ‘전성기’는 지난 3~5년 전에 마련했던 미래전략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서 “전세계가 4차 산업의 변곡점을 맞은 중차대한 시기에 현재의 총수 공백은 3~5년 뒤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