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30주년, 첫 연결 날짜는 가물가물…왜?

인터넷 30주년, 첫 연결 날짜는 가물가물…왜?

입력 2012-05-30 00:00
업데이트 2012-05-3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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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5월 인터넷 연결 성공…정확한 날짜는 아무도 몰라

국내에 인터넷이 도입된 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1982년 5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경북 구미의 전자기술연구소(KIET)의 중형 컴퓨터를 인터넷으로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인터넷 종주국 미국보다는 13년가량 늦었지만 아시아에선 최초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성대한 행사를 갖는다.

인터넷을 비롯한 IT한국의 눈부신 발전상은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2002년 초고속 인터넷 1000만 가구 시대를 연데 이어 2006년에는 세계 최초로 WiBro와 HSDPA를 상용화하며 인터넷에 관한 한 세계의 리더 국가로 우뚝 섰다.

보스턴 컨설팅은 2010년 한국의 인터넷 경제규모는 86조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7%로 세계 최상위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처럼 놀라운 발전의 시초가 된 첫 인터넷 연결의 정확한 날짜는 아무도 모른다.

당시로선 요즘처럼 ‘로그인’ 기록 같은 것이 자동으로 남는 것도 아니어서 따로 기록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유일한 방법은 전길남 교수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인데 전 교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만 전 교수가 “5월 말경이었던 것 같다”고 하니 30주년 기념식을 5월 30일에 치른다는 게 방통위의 설명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당시 자료나 메모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미했던 출발의 결과가 이렇게 창대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일까.

정확한 생일조차 모른 채 서른 살을 맞은 한국 인터넷은 ‘무선 인터넷’과 ‘사물 인터넷’으로 발전을 거듭하며 산업의 패러다임까지 바꾸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됐다.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알아서 잘 커준 기특한 효자인 셈이다.

정부가 앞으로 할 일은 불필요한 간섭은 줄이되 창의적 환경 조성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스마트폰 혁명을 따라잡지 못하고 IT 한국이 한때 휘청거렸던 경험이나 이로 인해 정보통신부 부활론이 고개를 드는 것은 현 정부의 쓰린 기억으로 남게 됐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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