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순치관계의 일한공생/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글로벌 시대] 순치관계의 일한공생/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입력 2011-03-21 00:00
업데이트 201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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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은 이빨이고, 입술은 입술이다. 이빨은 이빨의 고유함을 유지하고, 입술은 입술의 특징을 가다듬어야 한다. 양자가 서로의 입장을 잘 나타내고 서로의 특징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서로가 빛이 나며, 이런 것을 우리는 ‘윈윈’이라고 말한다. 양자는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관계다. 우리는 이빨과 입술의 관계를 순치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치순(齒脣)”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순을 고려하여 “일한(日韓)”이라고 쓰고 있다. 또한 상대에 대한 인간적 존중의 맥락이라는 표현으로서 “일한(日韓)”이라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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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과거 베트남 여인들은 성인식의 일환으로 이빨에 검은 물을 들이는 의식을 치렀다. 흑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검은 물감만으로 되지 않는다. 이빨에 자연산 흑칠을 한 뒤, 그 위에 개미의 뒷구멍에서 채취한 액즙을 칠한다. 일종의 에나멜 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흑칠이 벗겨지지 않도록 보호막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광택이 나는 효과를 얻으려고 하였다. 특히 앞니들의 광택이 잘 나도록 칠하는 것이 중요한 미모갖춤의 첩경이었다.

개미로부터 얻는 액즙을 한번 칠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거듭해서 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한달 걸린다. 한달 동안 어린 여인들은 입을 벌리고 있어야만 했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의식적으로 입술을 아래 위로 벌려서 이빨에 칠해진 개미액즙이 잘 마르도록 할 수 있지만, 수면 중에는 그것이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대나무 가지를 얇게 잘라서 아래 위의 입술을 벌리고 있도록 고안된 장치를 하였다. 입술에 오는 고통은 참을 수 있었지만, 이빨이 시려오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특히 겨울에는 이 과정이 아주 힘들었기 때문에, 그 작업은 가능한 한 동절기를 피하였다.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려온다. 이빨이 시리면 잠을 잘 수가 없고, 잠을 잘 수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이빨을 잃어버리면 잇몸이 대신한다는 말이 있다. 음식을 먹을 때의 얘기다. 이빨을 다 잃어버려서 입술이 입안 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버린 얼굴 형상을 우리는 합죽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모두들 틀니다 임플란트다 해서 잃어버린 이빨 대신에 인공적인 이빨들을 갖추고 있지만, 과거 노인들의 얼굴에서 흔히 볼 수 현상이 합죽이었다.

합죽이가 되면, 전체 얼굴 모습이 틀어진다. 이빨을 잃어버리면 입술이 비틀어지고 안쪽으로 오목하게 쭈그러짐으로써 입술 고유의 모습이 사라지게 된다. 이미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미지가 달라진다는 것은 존재감의 상실을 초래하게 된다. 합죽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모두들 인공이빨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입술이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빨을 필요로 한다. 이빨과 입술은 공생관계의 전형적인 모형인 셈이다. 양자는 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며, 양자의 공생은 필연적이며 숙명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시아에, 대륙 쪽으로는 이빨인 한국이, 태평양 쪽으로는 입술인 일본이 지정학적으로 존재한다. 사상초유의 지진과 해일 그리고 원전사고에 곁들인 복합적 스트레스로 인하여 일본이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강 건너의 불이 아니다. 입술이 흔들리면, 이빨의 존재가 어렵다. 일본이 흔들리는 것은 한국 존재에 직격탄의 도미노를 부른다. 이럴 때, 한국의 지도자들은 일본이 흔들리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구급대를 파견하는 정도의 안이한 대처로는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가 없다.

입술의 위기상황을 돌파함에 이빨의 대응이 필요하다. 입술 방어를 위한 분야별의 비상조치에 돌입해야 한다. 베푸는 차원이 아니다. 입술 구제를 위한 이빨의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 때, 한국인들은 새로운 “일한(日韓)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순치의 일한관계를 직시한다면, 한 세기 전의 구원적 과거와 현재의 위기상황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미래의 공생구도를 만드는 것이 아시아의 역사를 만드는 시발점이 된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있는 기회다.
2011-03-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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