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체면 구긴 신재민/안미현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체면 구긴 신재민/안미현 문화부장

입력 2010-06-23 00:00
업데이트 2010-06-23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지난달 27일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기자들과 마주했다. 정례 간담회라 환담(歡談) 차원에서 그칠 수도 있었지만 신 차관은 ‘기삿거리’를 제공했다. 당시 수세에 몰려 있던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을 향해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고 일갈한 것이다. 조 위원장은 독립영화 제작지원 심사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시달리고 있었다. 보호막을 기대했던 조 위원장에게 주무부처인 문화부는 등을 돌렸고, 조 위원장의 사퇴는 시간문제로 보였다.

이미지 확대
안미현 금융부장
안미현 금융부장
영화 담당기자에게 영진위 측 동향을 잘 살피라고 주문했다. 신 차관의 발언이 있고 행동에 옮기기까지의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그날 저녁쯤에는 조 위원장의 사의 표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영진위원장 임명 권한은 문화부에 있다. ‘자르는’ 권한이 없다 하더라도 주무부처의 차관이 그 정도 ‘질책’했으면 응당 밤 사이 기사를 고쳐써야 할 상황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담당기자에게서 의외의 보고가 들어왔다. 영진위 해명인즉, 신 차관의 발언을 접한 위원장께서 장관의 뜻도 그러한지 확인차 문화부로 직접 들어가 연락이 안 된다는 전언이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의아한 대목이 있었지만 불명예 퇴진 위기에 몰린 당사자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모양새가 이상해진 것은 그 다음이었다. 신 차관이 사실상 사퇴를 공공연히 종용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조 위원장이 물러났다는 얘기가 없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속된 말로 차관의 ‘말발’이 안 먹히거나 정부가 무리하게 옷을 벗기려 했거나다. 전자(前者)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더러 잡음이 들리기도 하지만 어찌됐든 현 정권의 실세로 분류되는 사람이 신 차관 아닌가. 혹시 영진위 전언대로 장관(유인촌)의 의중을 은밀히 확인해 봤더니 차관의 뜻과 달랐다? 길지 않지만 관가를 몇 년 취재해본 경험으로는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장관의 뜻, 엄밀히는 정권의 기류를 파악하지 않고 공개석상에서 현안에 관해 작심하고 입을 여는 차관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전혀 없진 않다. 현 정권 아래서 국방부가 그랬다. 하지만 극히 드문 경우다.

그렇다면 정부의 사퇴 종용이 부당해서? 부당한 요구에는 버티는 게 옳다. 그럼 부당한가. 조 위원장은 지원작을 뽑는 심사위원 총 9명 중 7명에게, 그것도 해외출장지에서 국제전화까지 걸어 특정작품들을 ‘부탁’했다. “접수번호까지 불러줬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주장이다.

백번 양보해 조 위원장 주장대로 압력이 아니었다고 치자. 하지만 전화 받은 당사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모두 외압으로 느꼈다면, 그래서 위원장더러 물러나라고 한목소리로 외친다면 억울하다고 항변하기 전에 겸허한 반성과 책임지는 모습이 먼저다. 그뿐인가. 친정 격인 영화인들까지 나서 공개적으로 몇 차례나 자진 사퇴를 촉구하지 않았는가. 조 위원장은 그들이 영화인을 모두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박할지 모른다. 옹색하다. 그의 행위는 외압 의도를 떠나 명백히 부적절했다.

정부도, 영화인들도 외면하는데 버티는 모양새는 볼썽사납다. 이쯤 되니 구구한 해석마저 나돈다. 장·차관 자체가 교체대상이어서 문화부 말발이 안 먹히는 것이라느니, 곧 물러날 처지인지라 장·차관이 악역을 피하는 것이라느니, 마땅한 대안(후임자)이 없어 관망 중이라느니, 조 위원장이 ‘믿는 구석’이 있다느니….

진실은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산하기관을 이끌어야 하는 문화부의 위상과 리더십이 적잖이 손상됐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야 ‘총대’를 멘 신 차관의 체면이 구겨졌지만 어디 이게 신 차관의 문제인가. 부적절한 행위라고 나무라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부처의 말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그러니 조 위원장이 국회에서 “문화부가 사퇴를 촉구한 게 아니다.”라며 신 차관의 헛발질로 몰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hyun@seoul.co.kr
2010-06-23 30면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