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김기춘 실장의 몇 가지 잘못/이지운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김기춘 실장의 몇 가지 잘못/이지운 정치부 차장

이지운 기자
입력 2015-02-24 00:32
업데이트 2015-02-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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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운 정치부 차장
이지운 정치부 차장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대답은 늘 명료했다. 대통령의 신뢰도, 청와대 직원들의 존경도 여기서 시작됐다.

사(邪)나, 사(私)는 많은 이의 눈으로부터 오랜 시간 숨기기 어려운 법이다. 명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고 그 내용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예상되더라도 적어도 존명(尊命)의 마음만큼은 한결같았던 듯싶다. ‘소리 없는 보좌’는 존명의 구체적인 방법이었다. 국정 행위의 대상과 결과가 조명받기를 원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에 가장 부합하는 비서실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그런 김 실장이 존명에 실패한 대표적인 일을 꼽으라면 지난해 총리감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안대희·문창극 후보자가 낙마한 뒤 그는 “더 이상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며 천거의 임무를 포기하고 말았다. 당시 위기감이 어떠했는지는 두말할 필요는 없겠다. 정권 붕괴론을 들먹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는 세월호 사고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 추궁이 필요했고, 그 방편으로 정홍원 전 총리의 경질이 선택된 것이다. 잇따른 총리 후보자의 낙마 자체도 정권에는 위기였지만, 정 전 총리로의 회귀는 세월호 사건 수습을 장기화시킨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모든 정치적 책임을 대통령에게 지운 일이기도 했다. 두 번의 실패 이후라도 그는 천거했어야 했다. 세 번째를 골라 놓고도 실패했다면 그 책임은 본인이 지면 될 일이었다. 혹시 정권과 자신을 동일시한 것이 아니라면 사표를 내놓고 세 번째 후보자를 추천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는 여기서 ‘책임감’을 보여 줄 기회를 놓쳤다.

뒤이어 터진 ‘실세 관련 문건 유출 사건’은 ‘소리 없는 보좌’를 무색하게 했다. 2014년 1월부터 문제가 됐고, 이후 몇 차례 이런저런 소동을 일으킨 일이었다. 긴 잠복기와 숙성기를 거쳐 그해 말에는 정권 출범 이후 가장 큰 사건으로 터져 나왔고, 국정수행 지지도 최저 수준에서 집권 3년차를 맞게 하는 출발점이 됐다. 이 기간 김 실장이 어떤 조치를 어떻게 취했는지는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 ‘근거 없는 찌라시’에만 무게를 둬 정무적 판단에 오류를 드러낸 동시에 ‘관리’ 자체에도 실패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관리에도 실패했다는 것은 그의 존재감에도 회의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지금 청와대의 시스템은 상당 부분 그의 업무 성향에 맞춰 구축된 것으로, 뭘 하는지 늘 모호해도 그의 스타일이 주는 안정감, 즉 ‘소리 없는 관리’는 호평을 받아 왔다. 그렇기에 근본적으로 지적됐던 그의 몇몇 단점들은 상쇄될 수 있었다. 하지만 관리에도 구멍이 나고 소리도 더 이상 커지기도 힘들 만큼 터져 나오고 말았으니 ‘김기춘형 보좌’는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게 됐다.

김 실장이 그 무소음을 위해 정치의 공간을 없애 온 것은 가장 잘못된 결과로 이어졌다. 그 공간을 없앤 대가로 청와대는 ‘정치’에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그 액수는 날로 치솟고 있다. 청와대 전체에 덧씌워진 ‘불통’의 이미지 역시 상당 부분 그 무소음의 대가이기도 했다. 나아가 정부 부처와 공무원 사회에는 ‘경직’을 유발했고, 그것은 대통령이 강조해 온 창조경제에는 가장 큰 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공과를 안고 청와대를 떠나거니와 남은 자들은 그것을 되짚어 볼 일이다.

jj@seoul.co.kr
2015-02-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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