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꽃제비’ 강제 북송, 정보전과 외교의 실패다

[사설] ‘꽃제비’ 강제 북송, 정보전과 외교의 실패다

입력 2013-05-31 00:00
업데이트 2013-05-3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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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死線)을 넘어 탈북한 ‘꽃제비’ 출신 탈북자 9명이 우리 정부의 무사안일한 대응 속에 그제 라오스에서 북으로 다시 끌려갔다. 길게는 3년을 중국에서 떠돌다 가까스로 국경을 넘어 라오스에 도착해 자유의 품에 안길 날을 학수고대하던 이들이었건만 끝내 강제 북송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맞고 만 것이다. 지난 10일 이들이 라오스에 도착한 뒤 그제 다시 북으로 끌려가기까지 라오스 주재 한국 대사관이 한 일이라곤 이들에게 “그냥 기다리라”고 한 것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들이 북한 요원들에 의해 중국을 거쳐 다시 평양으로 끌려갈 때까지도 우리 외교당국은 이들의 북송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말문이 막힌다.

중국 공안의 탈북자 단속이 강화된 뒤로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은 지난 수년간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넘어오기 위한 주요 탈북 루트가 돼 왔다. 라오스만 해도 지난 3년간 탈북자 약 400명의 한국행이 성사됐을 정도로 주요 탈북 거점이 돼 왔고, 라오스 정부의 암묵적 협조 아래 비교적 순조롭게 한국행이 이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탈북자 9명의 경우는 그간의 사례와는 사뭇 달랐다고 한다. 탈북자 1명에게 북한 요원 1명이 달라붙어 북송했을 만큼 북한이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북한 대사관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국 대사관 직원을 가장해 탈북자들을 면담, 이들의 신원을 파악하고는 이들을 북한의 단체여행객으로 둔갑시켜 항공편으로 중국을 경유해 평양으로 직행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구걸 행위로 연명하던 꽃제비들을 북한 당국이 왜 그리 공을 들여 빼돌린 것인지, 그 배경은 베일에 가려 있다. 탈북자 가운데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 여성의 아들이 포함돼 있었고, 이에 북한 당국이 일본인 납치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을 우려해 기획 북송에 나섰다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배경과 경위가 무엇이든 우리 외교당국의 무사안일주의가 라오스 정부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격인 것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할 것이다. 한마디로 허술한 정보력과 외교 부재의 총합이 아닐 수 없다.

극심한 굶주림 끝에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꽃제비들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외교력으로 북한 인권을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외교부는 이들의 강제 북송과 우리 라오스 대사관의 대응 과정을 가감 없이 공개하고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

2013-05-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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