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오죽하면 서울시장이 ‘메르스 본부장’ 자처했겠나

[사설] 오죽하면 서울시장이 ‘메르스 본부장’ 자처했겠나

입력 2015-06-05 23:24
업데이트 2015-06-05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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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그제 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서울 대형병원 의사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A(38)씨가 대형 행사장과 식당에 수차례 드나들며 불특정 다수의 서울 시민과 접촉했다는 것이다. A씨가 지난 1일 확진 판정을 받을 때까지 1565명이 참석한 개포동 재건축조합 총회, 병원 대강당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했다며 자세한 동선도 함께 공개했다. 박 시장은 다수의 서울 시민이 메르스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는 심각한 상황인데 서울시는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했다면서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도 드러냈다.

박 시장의 기자회견은 일파만파의 파문을 몰고 왔다. 첫 환자가 발생하고 2주일이 지나서야 대통령 주재 메르스 회의를 가졌던 청와대는 이번엔 반나절 만인 어제 아침 반응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시장의 발표로 불안감과 혼란이 커지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도 “정부의 조치가 마치 잘못된 것처럼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입장을 발표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정보 교류는 잘 이뤄진다고 반박했다.

개념 없는 의사로 비판받게 된 A씨도 “메르스 의심 환자인 상태에서 행사에 참석한 것은 아니며 증상이 나타난 지난달 31일 이후에는 집사람 외에는 접촉한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A씨의 말처럼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외부 모임에 참석한 것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보면 자가 격리 대상자가 그 사실도 모르고 곳곳을 활보한 것은 문제다. A씨의 말대로 방역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통보도 사전에 받지 못했다면 방역 당국의 문제는 보통 심각하지 않다.

박 시장이 대권 주자로서의 정치적 행보로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회견을 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또 실제보다 불안감을 부추긴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큰 틀에서 보면 박 시장이 공개한 게 맞다고 본다. 박 시장이 공개를 했기 때문에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한 1500명이 넘는 다른 조합원들도 본인들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고, 확산도 막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박 시장의 폭탄 발표가 없었다면 정부가 그 사실을 공개했겠나.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하며 뒷북 대응만 하는 정부와는 달리 박 시장이 독자적으로 메르스 환자의 이동 경로를 공개한 것은 잘했다는 평가가 많다. 서울시가 당시 재건축조합 총회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문자나 전화로 연락을 해서 알려 주니 고마워하는 시민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메르스 지도’를 스스로 만들어 공유할 만큼 시민들은 메르스 정보에 목말라 있다.

사실상 ‘국가비상사태’로까지 번진 메르스 사태는 무능한 정부, 감추기만 하려는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국민 10명 중 7명은 정부의 메르스 대응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오죽하면 박 시장이 예정된 유럽 순방까지 취소하고 (서울시의) 메르스 대책본부장을 자처하고 나섰겠나. 능력이 없는 정부의 책임자들은 입만 열면 변명만 일삼고, 사실을 축소하는 데 급급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신뢰를 잃어버린 정부는 박 시장이 혼란을 부추겼다고 비판할 자격이 없다.
2015-06-0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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