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정치운명 건 승부사 오자와

다시 정치운명 건 승부사 오자와

입력 2010-08-26 00:00
업데이트 2010-08-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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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일본 차기 총리를 결정하게 될 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서겠다고 손을 든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68) 전 간사장이 일본 정치의 핵으로 떠오른 건 1989년이었다.

 당시 만 47세의 젊은 오자와는 가이후(海部) 내각이 발족했을 때 여당인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했다.

 이와테(岩手)현 오슈(奧州)시 출신으로 1969년에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뒤 일찌감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의 뒤를 이을 ‘다케시타의 7인방’ 중 한명으로 꼽힌 젊은 오자와는 1989년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상실하고 흔들리기 시작한 자민당의 구원투수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오자와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자신과 일본 정치 전체의 운명을 건 승부를 걸었다.

 1993년 미야자와(宮澤)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에 찬성해 자민당을 뛰쳐나간 뒤 신생당을 만든 것.

 이때 오자와의 머릿속에는 이미 일본식 다당제 정치를 청산하고 미국식 ‘보수 양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구상이 들어 있었다.

 자민당을 분열시켰다는 이유로 ‘암살자’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이후 호소카와(細川),하타(羽田),무라야마(村山),오부치(小淵) 등으로 이어지는 연립내각을 만들었다가 부수기를 되풀이했고,자신이 이끄는 당의 간판도 신생당에서 신진당,자유당,보수당으로 끊임없이 바꿔나가며 승부사의 이미지를 굳혀나갔다.

 자민당 이탈파와 구(舊) 사회당 일파가 힘을 합쳐서 만든 현재의 민주당을 수권 정당의 반석에 올려놓은 것도 오자와였다.

 보수당 간판을 이끌고 2003년 9월 간 총리가 이끌던 구(舊) 민주당과 합친 오자와는 이후 2005년 중의원 선거를 제외한 모든 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선거의 귀재’라는 명성을 얻었고,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선 민주당 대표로서 후보를 한명 한명 자신의 손으로 골라 훈련을 시켰다.

 중의원 선거 대승을 이끈 후 자연스럽게 일본 총리 자리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던 오자와는 도쿄지검 특수부가 수사한 ‘정치자금 의혹’에 휘말려 선거 직전인 지난해 5월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총리직을 양보했다.

 이후 당 간사장을 맡아 ‘막후 대부’ 역할을 수행했지만 정치자금 의혹으로 나빠질대로 나빠진 여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하토야마 전 총리와 함께 동반 사퇴한 오자와는 ‘탈(脫) 오자와’ 깃발을 높이 내건 간 총리에 맞서 차기 총리직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다시한번 정치운명을 건 일대 승부에 나서게 됐다.

 47세의 나이로 자민당 간사장이 된 이래 20년 이상 일본 정치의 최대 혼란기를 뒤에서 조종해온 ‘난세의 오자와’도 이제 어느새 68세.다음 달 경선에서 패배할 경우 이후 정치 인생이 어찌될지 장담하기 어려운 나이에 접어든 일본 정계의 실력자 오자와는 불리한 판세를 뒤집고 정상에 올라설 수 있을까.일본 국민의 눈길이 일찌감치 9월14일에 열릴 민주당 대표 경선으로 쏠리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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