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일본 정치인 야스쿠니 참배 무엇을 노리나

일본 정치인 야스쿠니 참배 무엇을 노리나

입력 2013-04-25 00:00
업데이트 2013-04-25 11:5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전후체제 타파, 과거 미화의 정치 이벤트”총리 참배 정착 거쳐 일왕 참배 실현 목표”

일본의 보수 우익 정치인들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집착하는 정치적 저의는 패배주의적인 전후 역사인식과 전쟁책임의 죄의식에서 탈피해 과거를 미화하고 일본인의 주체성을 재확립하는 데 있다.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일본 각료나 정치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 영령의 명복을 비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점에서 볼 때 정치인들의 집단 참배 행위 등은 전후체제 타파를 겨냥한 상징적인 정치 이벤트의 성격이 짙다. 정치인 개인 입장에서는 전몰자유족단체인 일본유족회 등 보수우익층의 지지표를 의식한 행위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은 그동안 ‘야스쿠니 문제’가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를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패전일인 8월 15일에 공식 참배한 것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처음이다. 그는 패전 40주년인 1985년 8월 15일 두 명을 제외한 각료 전원을 대동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총리 자격으로 당당히 참배했다. 아시아 전쟁 피해국들의 군국주의 부활 우려와 ‘전전(戰前) 시대로의 복귀’라는 일본 내 비난을 무시하고 강행된 참배였다.

해군장교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나카소네 전 총리는 “전쟁 전에는 황국사관이 있었으나 전후에는 태평양전쟁사관이나 도쿄재판 사관이 생겨 일본이 무엇이든 잘못했다는 자학적 풍조에 물들어 있다”며 일본인으로서의 주체성 확립과 패배주의적 역사인식의 타파를 부르짖었다. 당시 나카소네가 스스로 밝힌 야스쿠니 참배 배경이다.

그의 1985년 참배는 일본 사회의 저변에 잠복해 있던 대동아전쟁 긍정론과 전쟁 불가피론의 공론화이자 과거 미화 작업의 시작을 알렸었다.하지만 당시 나카소네 정권의 공식 참배는 한 번뿐의 단명으로 끝났다. 야스쿠니 신사에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사실이 알려진 이후 처음으로 단행된 일본 총리의 공식 참배에 항의해 한국, 중국이 격렬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나카소네 정권은 결국 “총리의 공식 참배로 과거 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며 관방장관 명의의 사과 담화를 발표하고 참배를 중단했다. 이때부터 중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는 일본 각료 가운데 총리, 관방장관, 외상은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이해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가 1996년 7월 사적 참배를 내세워 야스쿠니를 찾았지만 한국과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자 그 후로는 참배를 단념했다.

아시아 피해국의 반발로 수면하로 들어갔던 야스쿠니 참배는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의 집권을 계기로 다시 부활됐다.

총리 취임을 전후해 “어떠한 비판이 있어도 나는 반드시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고 공언해온 고이즈미는 나카소네 참배 21년 만인 2006년 8월 15일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했다. 5년 반의 재임 기간 여섯 번이나 강행된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는 나카소네 이후 끊긴 ‘공식 참배’ 운동을 되살리려는 일본유족회 등 우익 세력의 부단한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일본의 진보 지식인들은 이처럼 정치권 저변의 우익세력들이 야스쿠니 참배에 필사적인 이유는 총리 참배의 정례화, 제도화를 거쳐 궁극적으로 일왕의 참배를 실현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총리에 이어 각료 전원과 3권 수장, 그리고 일왕의 참배를 실현시켜 ‘일본의 전쟁은 올바른 것이었다’는 ‘야스쿠니 사관’을 일본의 국론으로 만드는 것이 야스쿠니 부활파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이야기다.

이번 야스쿠니 신사 참배 파문을 둘러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정치적 언동은 과거 고이즈미 전 총리의 그것과 닮은 점들이 적지 않다. 고이즈미 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 야스쿠니 문제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당시 그는 일본 국민 사이에 확산된 중국 불신, 중국 위협론 등을 등에 업고 야스쿠니 문제로 상징되는 대중 강경 자세를 취함으로 지지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는 상대국의 입장을 배려하거나 이웃 국가와의 외교 관계는 안중에도 없는 특유의 포퓰리즘 정치로 대중을 선동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의 이러한 대중 영합적 정치는 ‘압력에 굴하지 않는 정치가’라는 강성 이미지가 강한 아베 총리와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적지않다. 아베 총리는 24일 국회답변을 통해 ‘일본 각료에게는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참배를 정당화했다.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의 후광을 업고 2006년 1차 집권했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전후체제 탈피’를 내걸고 헌법개정 요건 완화 등을 밑어붙이다 지지율 하락을 자초했었다.

일본 진보세력은 총리의 공식 참배가 관례화되면 일왕의 공식 참배 운동이 일어나고 그렇게 되면 일왕과 야스쿠니 신사를 정점으로 한 전전(戰前)의 초국가주의 체제와 국가신도가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의 보수 정신은 야스쿠니로 통한다. 총리와 일왕의 야스쿠니 공식 참배 관례화 문제는 신격화된 천황제 부활, 헌법개정, 군사 대국화 움직임 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 진보 지식인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