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간 해외연수 떠나는 신정수 PD
“마음이 편치만은 않네요.”지난 14일 일산 MBC드림센터에서 만난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 신정수 PD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해외연수를 위해 잠시 프로그램을 떠나야 하는 미안함이 표정에서 묻어났다.
신정수 PD는 18일 쿠바로 출국한다. 그는 석달간 세계 각지를 돌며 아이디어 구상을 할 예정이다.
지난 3월말 김영희 PD의 교체로 갑작스럽게 ‘나가수’를 맡게 된 후 9개월 만의 휴식이다.
그는 “1라운드가 진행되는 3주일이 매번 1주일처럼 지나갔다. 벌써 10라운드, 30주를 했는데 정말 시간이 빨리 간 것 같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작년 이맘때 설 특집 ‘놀러와’ 세시봉 콘서트를 준비하느라 바빴다는 그는 “세시봉 할 때는 악플러 없는 PD였는데 ‘나가수’ 하면서 악플러가 많이 생겼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만큼 ‘나가수’의 파급력은 그가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예능 프로가 자리 잡기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리는데 ‘나가수’처럼 초반부터 많은 관심을 끈 프로그램은 흔하지 않아요. 김건모 씨의 재도전 논란에서 시작된 붐이 제가 오고도 잘 이어졌죠. 임재범 씨가 바람몰이하고 이소라, 윤도현 씨가 중심을 잡아주고 김범수, 박정현 씨가 잘 해줬어요. 지금 공연의 질도 처음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3년간 몸담았던 ‘놀러와’를 떠나 처음 ‘나가수’를 맡게 됐을 때 두려움은 컸다.
신 PD는 “프로그램을 맡으면 모든 PD가 다 두렵지만 이런 큰 프로그램을 내가 해도 될까,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많이 두려웠다”고 밝혔다.
그가 지휘봉을 잡고서도 ‘나가수’는 논란에 시달렸다. 옥주현을 둘러싼 악성 소문부터 스포일러, 편집 조작까지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일일이 해명할 수 없어서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진실의 편이라 생각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각종 음모론도 견딜만 했던 그에게 JK김동욱의 자진 하차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는 “내 마음과 다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며 “붙잡고 싶었는데 주변 여론이나 본인 의사 때문에 제작진이 자유롭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숱한 논란 속에서도 프로그램은 차차 안정궤도에 들어섰다. 음악감독을 영입하는 등 음악적인 부분을 강화하면서 주옥같은 무대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 PD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공연으로 자우림의 ‘가시나무’를 꼽으며 “원래 좋아하는 노래를 원곡보다 더 좋아지게 만들기 쉽지 않은데 자우림의 공연은 정말 좋았다”고 평했다.
최근 탈락한 인순이를 향한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김건모, 이소라 이후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인순이를 꼽으며 “자신이 뭘 얻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후배를 위한 큰 그늘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임해줬다”고 말했다.
최근 적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신 PD는 적우 섭외에 대해 “100% 제작진의 결정”이라며 외부 개입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독특한 음색을 가졌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는 가수라고 생각해요. ‘나가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수들도 필요합니다. 적우는 청중평가단의 추천가수에도 많이 나왔던 사람이고 섭외 전에 공연 동영상을 많이 봤는데 노래를 못하는 가수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적우는 우리 가족이라 생각한다. 가족이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는데 떠나게 돼 마음이 편치 않다”며 “적우와 제작진이 서로 노력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노래는 청중평가단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나가수’가 강하고 지르는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나가수’의 편곡 스타일과 청중평가단 모두 진화하고 있다는 말로 답했다.
”평가단은 음악을 상당히 좋아하시는 분들인데 그들의 정서와 평가가 잘못됐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뭘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런 지적은 어찌 보면 자기의 음악적 취향을 상대방한테 강요하는 측면이 있어요. 평가단은 시청자의 대표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듣는 귀를 믿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신정수 PD는 음악적 이해가 높은 연출자로 꼽힌다.
열두 살 때부터 ‘두시의 데이트’를 들으며 음악에 빠졌던 그는 사이먼&가펑클부터 레드 제플린, 콜드플레이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예능 PD가 된 것도 음악과 쇼, 드라마가 예능에 다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지금도 공연을 볼 때가 가장 좋다고 했다. 매주 목요일 마포에 있는 ‘나가수’ 연습실을 찾아 가수들의 공연을 보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은 그 어떤 때보다 즐겁고 행복하단다.
”PD가 되기 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송창식, 조용필, 김창완, 임재범 같은 가수들을 1년 안에 다 만나는 행운을 누린 PD는 저밖에 없을 겁니다. 실제로 만나니까 정말 떨리더라고요. 조용필 씨와 술 마시는 기회까지 있었으니 올해 제가 대운이었나 봐요.(웃음)”
그는 앞으로 만나고 싶은 뮤지션으로 들국화, 서태지, 김민기를 꼽으며 ‘친해지고 싶다’는 음악팬으로서 바람을 덧붙였다.
연출자로서 신 PD의 요즘 화두는 ‘나가수’가 오래 갈 방법을 찾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간 점검에서 예능적인 요소를 강화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다. 개그맨 산울림 가요제도 이런 고민에서 나온 시도다.
”’나가수’가 사라졌을 때 대중문화의 편중 현상이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처음에 음악적으로 보완하면 더 오래갈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시청률이 떨어지는 걸 보면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시청층을 더 넓힐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젊게 보일 방법이 뭘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 할 일은 ‘머리를 비우는 것’이다.
”연수하는 처음 두 달은 저를 텅텅 비웠으면 해요. 비워져야 뭔가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계를 다니면서 그 나라의 음악을 듣고 방송을 보고 싶어요. 채우는 건 돌아오기 일주일 전부터 하고 싶네요.(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