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위기 넘긴 지하철 게시판 ‘풍경소리’ 운영 이용성 사무총장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종교도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사소한 나눔과 공유의 배려부터 먼저 다져야 할 것입니다.” 1999년부터 지하철역 게시판 ‘풍경소리’를 운영해 온 이용성(51) 풍경소리 사무총장. 4일 이른 아침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만난 그는 최근 지하철역에서 ‘풍경소리’ 게시판이 철거돼 사라질 뻔한 사태를 두고 “안타깝지만 넘고 극복해야 할 단계로 본다.”며 희망 섞인 안도의 말부터 꺼냈다.1999년부터 지하철과 철도역에 잔잔한 울림을 전하는 게시판 ‘풍경소리’를 운영해 온 이용성 사무총장. 평화로운 공존의 바탕은 나눔과 공유라고 말한다.
‘풍경소리’는 전국 지하철, 철도역 승강장 벽과 기둥에 설치된 짧은 글 게시판이다. 1992년에 먼저 시작한 개신교의 ‘사랑의 편지’ 게시판과 함께 시민들에게 잔잔한 울림과 감동을 주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두 게시판을 철거한다는 방침이 시달됐단다. 철거 소식이 전해지자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지하철 문화 아이콘 풍경소리-사랑의 편지 철거를 막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이슈 청원이 올라왔고 2000여명의 누리꾼이 여기에 동참했다. 이 흐름 때문인지 결국 서울시 측이 백지화로 선회했다.
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 설치된 불교의 ‘풍경소리’와 개신교의 ‘사랑의 편지’ 게시판.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종교 마찰에 대한 앞선 우려가 적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불교, 개신교 쪽에서 요란하지 않게 운영해 온 두 게시판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공존의 모범으로 삼아도 될 텐데….”
실제로 ‘풍경소리’와 ‘사랑의 편지’ 운영자들은 게시판 글의 내용이 종교적으로 치우치지 않게끔 수시로 만나 고민을 나누고 뜻을 모은다. 3∼4개월 전부터 공모받은 우수한 글 중 정제된 것만 게시한다. 비영리 공익 사업인 탓(?)에 고료며 운영비 마련도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높은 분’(?)들의 우려와는 달리 일반인들의 반응은 썩 좋은 편이다. 그동안 게시된 내용을 모아 4권의 단행본을 냈고 지난 3월부터는 외국인들을 위해 게시판에 국문과 영문 글을 함께 싣고 있다.
“지금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는 결국 ‘대중의 평안과 행복을 위한 고민과 활동’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자비와 평화, 사랑과 화해가 있지요.” 따져 보면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종교의 글이 나란히 걸리는 경우도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쉽지 않을 터. 그래서일까 이 총장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은 불교, 개신교 양측이 따로따로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함께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형태의 운영 방법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2-09-05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