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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복구 대장정 5년3개월의 기록

숭례문 복구 대장정 5년3개월의 기록

입력 2013-04-29 00:00
업데이트 2013-04-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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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아닌 복구..국보 가치 변함없다”목재 25톤·트럭 28대분·철물 6.3톤 투입

숭례문은 2008년 2월 어처구니없는 방화로 2층으로 된 문루가 불타 내렸다. 문화재청은 사고 수습에 이어 숭례문을 되살리는 일에 착수했다.

◇ “복원 아닌 복구” = 숭례문을 되살리는 일을 문화재청에서는 ‘복구’로 규정했다. ‘복원’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둔 말이다.

숭례문 복구자문단 기술위원장인 박언곤 홍익대 교수는 “국민 다수가 화재 당시 숭례문이 모두 타 버렸다고 알지만 이는 오해”라며 “소실된 부분은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복구 작업에서도 불에 그슬린 통나무를 기와 밑 깔개로 쓰는 등 예전 의 숭례문 부재를 상당 부분 활용했는가 하면, 활용이 불가능한 부재는 연구나 전시용으로 보존했다.

박 위원장은 “숭례문이 국보로서 지니는 가치는 그대로 존재한다. 숭례문은 사라진 것을 되살리는 ‘복원’이 아니라 훼손된 부분을 바로잡는 ‘복구’ 작업을 했다. 그러므로 국보로서의 가치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 공사개요와 복구기본 원칙 = 복구 공사 총 기간은 5년 2개월20일이다. 방화일을 기점으로 이번달 말까지를 잡은 기간이다.

투입된 총비용은 245억원. 문화재청 숭례문 자체복구 비용 147억원 외에 기탁금 7억5천만원, 신한은행 12억원, 포스코 3억원을 포함한 지원금, 서울시가 부담한 관리동 건립비 9억2천만원 등이 포함됐다.

복구에는 연인원 3만5천명이 동원됐다. 신응수 대목장, 이재순·이의상 석장, 홍창원 단청장, 한형준 제와장, 이근본 번와장, 신인영 대장장 등의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참여했다.

문화재청은 복구 기본 원칙으로 여섯 가지를 삼았다.

첫째, 화재 전 모습대로 복구하며 둘째, 사용 가능한 원래 부재를 최대한 활용하며 셋째, 일제 때 훼손된 좌우 성곽과 지반은 복원하고 넷째, 최고 장인이 참여해 전통기법으로 복구하며 다섯째, 전문가로 구성된 숭례문 복구 자문단을 운영하고 여섯째, 전 복구 과정을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 수행한다는 것이다.

◇ 달라진 숭례문 = 이렇게 해서 숭례문은 복구와 더불어 모습에 변모가 왔다. 기존에 없던 성곽이 좌로 16m, 우로 53m가 복원됐다. 용마루는 길이 15.7m에서 16.8m로 1.1m 길어졌다. 동측 계단 폭은 2.9m에서 5m로, 지반 높이는 조선 후기 때와 같이 30-50cm가량 낮아졌고 바닥에는 박석을 깔았다.

현판은 양녕대군 사당인 서울 동작구 상도동 지덕사(至德祠) 소장 숭례문 현판 탁본자료와 일제시대에 촬영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사진을 토대로 일부 바로잡았다.

홍예(아치형) 천장의 용 그림은 새로 그렸다. 안료는 인공 안료에서 전통안료로 대체하고 문양은 고증을 거쳐 조선 전기 것으로 그려 넣었다고 문화재청은 말했다.

1층 잡상은 원래대로 8개에서 7개로 줄였다. 잡상 이름은 맨 앞에서 순서대로 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 이귀박, 이구룡, 마화상 등이다. 기와는 KS기와(공장제기와)를 전통기와로 교체했다. 전통기와는 흡수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기와 아래 목부재를 습기로부터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1층 마루도 ‘조선고적도보’ 등의 기록을 토대로 바꿨다. 1960년대 해체 공사 당시에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우물마루 형태로 설치했지만 해체 이전에 있던 긴 판재를 까는 장마루로 변경했다.

건물 안에는 스프링클러 장치, 건물 밖에는 소화전과 방수총을 북동, 북서, 남동, 남서 귀퉁이에 각 1개씩 총 4개 설치했다. 화재 감지기와 CCTV를 건물 안팎에 여러 대를 설치해 화재 발생시 신속한 초동대처가 가능토록 했다.

또한 지붕 적심과 개판 사이에 방염천을 설치해 1천도 이상 고온에서도 10분 이상 견딜 수 있게 했다.

관리주체도 서울시 중구청에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로 이관됐다. 문화재청 관리 하에 지하 1층, 지상 1층 관리동(방재관리시설)을 새로 설치하고 경비원을 상주토록 했다.

◇ 복구과정 영상의궤 제작 = 복구 기록은 영상에 담아 다큐멘터리로 남겼다. 타다 남은 부재를 수습하고 공사를 위해 가설덧집을 세우며, 주변 지역을 발굴 조사하는 장면까지 담았다.

충남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는 숭례문 지붕에 올릴 전통 기와를 굽는 장면을 찍었고, 강원도에서 대들보로 쓸 나무를 고르는 현장도 담았다.

숭례문 복원 5년을 영상으로 기록한 연간 200일 분량의 파일은 문화재청에 넘겨 국가 기록으로 보관한다.

숭례문 복구에는 첨단 3D 레이저 스캔 기술도 동원됐다.

레이저가 물체에 부딪히면 반사돼 돌아오는 원리를 이용해 건물, 문화재 등을 3차원으로 촬영하는 기술이 3D 레이저 스캔. 이 기술을 이용해 컴퓨터에서 3차원 설계 도면을 만들었다.

이번 복구에는 디지털 측량 기업인 위프코가 2002년 문화재청 의뢰를 받아 3D 레이저 스캔으로 촬영한 자료가 요긴하게 활용됐다.

◇ 복구에 사용한 건축자재 = 화강암은 경기 포천 석산에서 캐 왔다. 깔돌인 박석은 강화도 매음리 산이다. 기와는 충남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전남 장흥에서 전통기법으로 구웠다.

단청 작업에는 1천541명이 동원됐으며, 사용 안료는 12종 1천332㎏이다. 석간주(82㎏)와 호분(80㎏)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일본에서 수입했다.

이를 두고 일본산 안료 사용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무엇보다 조선시대에도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서 썼다는 기록을 근거를 제시한다.

안료 원료가 되는 돌이 생산되는 곳은 세계에서도 몇 군데 없을 뿐 아니라 일본 또한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입한 돌을 갈아 안료를 만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 전통 안료 제조 기법이 사라졌으므로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일본산 안료를 사용하게 된 까닭은 여러 가지 안료들을 비교 시험한 결과 일본산이 다른 제품보다 품질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문화재청은 해명했다.

기와는 이근복 번와장 감독 아래 284명이 참여해 전통기와 2만3천369장을 지붕에 이었다. 암키와 1만 4천991장, 수키와 7천284장, 암막새 488장, 수막새 519장, 특수기와 96장 등을 사용했다.

신응수 대목장이 주도한 목공사에는 3천968명이 참여했다. 목재는 국내산 육송 15만1천369재로 26t이 사용됐다. 25톤 트럭 28대분이다.

화마를 피한 목재 6만47재는 재활용했다. 국민이 기증한 목재는 1만855재.

이번 복원에 사용한 목재는 문루 아래층(1층)의 경우 90% 이상이 기존 부재다. 피해를 많이 본 상층(2층)도 4개 고주(중심기둥)는 최대한 살리려고 기존 고주에 새 나무를 이어 붙였다. 이어붙인 흔적은 그대로 보이도록 했다.

대장장 신인영 씨 주도 하에 251명이 참여한 철물은 못을 비롯해 31종 3만7천563개가 사용됐으며, 총무게는 6.3톤에 달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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