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 회화관으로 ‘응시’ 발명한 화가 윤두서

사실주의 회화관으로 ‘응시’ 발명한 화가 윤두서

입력 2014-10-20 00:00
업데이트 2014-10-2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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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광주박물관 서거 300주기 특별전

윤두서 자화상
윤두서 자화상 국립광주박물관이 윤두서 서거 300주기를 기념해 마련하는 윤두서 특별전 출품작 중 자화상.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윤덕희의 ‘말을 탄 미인’
윤덕희의 ‘말을 탄 미인’ 국립광주박물관이 윤두서 서거 300주기를 기념해 마련하는 윤두서 특별전 출품작 중 그의 아들 윤덕희의 ‘말을 탄 미인’.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윤두서 글씨
윤두서 글씨 국립광주박물관이 윤두서 서거 300주기를 기념해 마련하는 윤두서 특별전 출품작 중 그의 글씨.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그리 크지 않은 자화상 하나로 한국 화단에 우뚝 선 작가 윤두서(尹斗緖.1668~1715). 한 올 한 올 그린 수염도 인상적이지만 앞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매는 더욱 강렬하다.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조현종)이 2014년도 가을 기획특별전으로 ‘공재(恭齋) 윤두서’를 마련해 21일 개막한다.

내년 1월18일까지 계속할 이번 기획전에는 윤두서를 필두로 그의 아들 낙서(駱西) 윤덕희(尹德熙.1685∼1776)와 손자 청고(靑皐) 윤용(尹용<마음심변에 容>.1708∼1740)에 이르는 윤두서 일가 3대의 서화 세계를 조망한다.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덕음산에 위치한 녹우당은 윤두서가 속한 해남윤씨 어초은공파(漁樵隱公派)의 근거지로, 호남지역 전통 화단의 토대를 이룬 산실.

고산 윤선도(尹善道.1587~1671) 증손인 윤두서는 1693년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격렬한 당쟁에 신물이 나 출사를 단념하고 시서화로 울분을 달래며 생애를 보낸다. 그의 재질을 이은 윤덕희는 말 그림과 남종화풍 산수화, 인물화와 용 그림에 특출났으며 윤용은 정밀한 묘사와 풍속화에 뛰어났다.

이번 특별전에는 조선을 대표하는 회화인 국보 제240호 윤두서 자화상을 필두로 보물 481호 가전보회(家傳寶繪)와 윤씨가보(尹氏家寶), 윤두서의 또 다른 명작인 노승도, 18세기 조선을 그린 대동여지지도와 일본여도를 비롯해 녹우당에서 나들이를 하는 각종 그림과 서책, 인장 등 200여 점이 선보인다.

박물관은 윤두서를 “조선 후기 회화사의 시작을 알리는 시대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면서 그가 “조선 중기와는 달리 사생과 관찰을 중시하는 사실주의적인 회화관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그의 회화관은 기졸(記拙)이나 자평(自評)과 같은 그의 화론(畵論)에 잘 드러난다. 그는 “필법이 공교로워야 하고 묵법은 그 묘미를 터득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법이 화합을 이루어야 그림(畵)이 도(道)에 이른다”고 했다.

나아가 화도(畵道)에 이르는 화품(畵品)으로 도(道)·학(學)·지(識)·공(工)·재(才)의 다섯 가지를 제기했다.

만물을 포괄해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화지(畵識)이며, 형상의 의표(意表)를 터득해 실행하는 것이 화학(畵學)이고, 만물의 척도가 되는 잣대를 제작하는 일이 화공(畵工)이며, 마음먹은 대로 표현할 수 있는 손의 능력이 화재(畵才)니, 이를 모두 갖추어야 화도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이런 생각이 “정확한 관찰과 사생을 통해 대상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회화관이며 단순히 사의(寫意)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회화관과는 차별성을 보인다”고 평가한다.

이는 공재와 동시대를 산 남태응(南泰膺.1687~1740)이 “말을 그릴 때면 마구간 앞에 서서 종일토록 주목해 보기를 몇 년간 계속했다. 말 모양과 의태를 마음의 눈으로 꿰뚫어 볼 수 있고 털끝만큼이라도 비슷함에 의심이 없어진 이후에야 붓을 들어 그렸다”고 한 언급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윤두서에게 그림은 단순히 여가에 즐기는 재주나 취미가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연구함으로써 궁극에 도달하려는 격물(格物)에 다름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윤두서와 그의 집안 회화 세계를 이번 전시는 4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먼저 윤두서의 가계와 생애를 살피고, 2부에서는 윤두서의 서화세계를 다룬 다음 제3부는 윤덕희, 윤용의 서화 코너로 할당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윤두서 일가의 회화가 후대에 미친 영향을 주목한다.

주인공인 윤두서의 회화 세계는 산수화, 인물화, 풍속화, 말 그림 등의 소재로 분류한다.

윤두서가 피력한 화법론은 지리와 병법(兵法), 풍수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져 동국여지지도나 일본여도 등의 회화식 지도를 제작하는 데로 발전했다고 본다.

윤두서가 영향을 끼친 후대 화가들로는 정선, 조영석, 심사정, 강세황, 강희언과 같은 문인화가를 비롯해 김익주, 김두량, 김홍도, 이인문, 김득신 등의 직업화가들을 지목한다. 윤두서가 새롭게 모색한 노력들이 이들에게 이어졌다는 것이다.

조선 말기를 대표하는 화가 소치(小癡) 허련(許蓮.1809~1892) 또한 진도 출신으로서도 28세 때인 1835년 해남 녹우당에 소장된 윤두서와 윤덕희 그림을 보고 임모(臨摹.베낌)하면서 그림에 눈을 떴다. 허련을 이렇게 연결한 이는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였다. 허련의 회화 전통은 넷째 아들 미산(米山) 허형(許瀅.1862~1938)과 손자 남농(南農) 허건(許楗.1908~1977), 방손(傍孫)인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1891~1977) 등으로 계승한다.

이로 볼 때 호남회화 300년 궤적은 윤두서에게 비롯된다고 봐도 대과가 없다.

조현종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윤두서를 선두로 한 조선 후기 회화사의 새로운 문화사적 의미와 300년에 걸쳐 이어지는 호남화단의 흐름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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