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극복한 성소수자의 삶, 1인 35역으로 그리다

상처 극복한 성소수자의 삶, 1인 35역으로 그리다

입력 2013-05-31 00:00
업데이트 2013-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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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

# 미국 록음악에 빠져 살던 동베를린의 청년 한셀은 미국으로 가는 것이 꿈이다. 어느 날 자신의 ‘미모’에 반한 미군을 만나고, 그는 한셀을 아내로 삼아 미국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어머니와 미군의 뜻에 따라 이름을 ‘헤드윅’으로 바꾸고 얼떨결에 성전환수술을 받지만 여성의 몸 대신 그에게 남은 건 ‘성난 1인치’.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는 미군에게 버림받고, 한때 사랑했던 소년 토미에게도 버림받는다. 세상에 대한 울분을 강렬한 록 사운드로 토해내는 그는 ‘로커 헤드윅’으로 미국을 누빈다.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의 소년 로다리는 15살 때 우연히 이모의 옷을 입으면서 자신이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부터 여장을 하고 살아온 그는 유대인들이 베를린에서 쫓겨난 뒤 그들이 쓰던 가구를 모으고, 분단 뒤 동독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이 불태운 집에서 가구를 모은다. ‘샤로테’라 이름을 바꾼 그(그녀)는 이렇게 모은 가구와 시계, 골동품 등으로 개인 박물관을 만든다. 매일같이 낡고 닳은 가구를 깨끗하게 닦는 게 그의 일상의 전부다.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는 나치 독일과 구 동독, 통일 동독 시대를 살았던 남장여자 ‘샤로테’의 일대기를 그렸다. 1인 35역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모노드라마이지만 한 배우가 여러 인물을 동시에 연기한다. 주인공을 번갈아 연기하는 배우 남명렬(왼쪽)과 지현준.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는 나치 독일과 구 동독, 통일 동독 시대를 살았던 남장여자 ‘샤로테’의 일대기를 그렸다. 1인 35역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모노드라마이지만 한 배우가 여러 인물을 동시에 연기한다. 주인공을 번갈아 연기하는 배우 남명렬(왼쪽)과 지현준.
두산아트센터 제공
2005년 국내 초연 이후 지금까지 1300여회 이상 공연됐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진 뮤지컬 ‘헤드윅’은 뮤지컬 마니아가 아닌 이들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다. 그런데 동베를린에는 헤드윅과 비슷한 삶을 산 ‘샤로테 폰 말스도르프’가 있었다. 더군다나 실존 인물이다. 그의 일생을 다룬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가 다음 달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나는 나의 아내다’는 2003년 뉴욕에서 초연된 후 퓰리처상과 토니상, 오비상 최고작품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초연이다. 나치 독일과 구 동독을 지나 통일 독일에 이르기까지 여장 남자로서 멸시와 억압을 받으며 살아온 ‘샤로테’의 일생을 그렸다. 미국 작가인 더그 라이트가 그의 일생을 연극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그의 박물관을 찾아 샤로테를 인터뷰하면서 시작되는데, 실제로 원작자 더그 라이트의 취재 내용을 기반으로 해 사실성을 더했다.

수녀처럼 검정색 모자와 원피스, 진주 목걸이로 몸을 꽁꽁 싸맨 샤로테는 화려하게 치장한 헤드윅과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특히 성소수자로서 아픔을 달래는 방식이 상반된다. 샤로테는 버려진 가구와 골동품들을 차곡차곡 모으고 쌓인 먼지를 닦으면서 억압 속에 살아온 유대인과 성소수자 등 한 많은 삶을 살아온 이들의 역사를 곱씹는다. 헤드윅처럼 부딪치고 싸우기보다 내면에 천착하면서 아픔을 승화한다.

그러나 샤로테는 연약한 듯 꿋꿋하다. 서슬 퍼런 구 동독에서도 성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이들을 달래고, 자신을 조롱하는 매체들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고물이나 마찬가지인 가구들을 지켜내며 억압적인 시대를 견뎌낸 샤로테는 음악과 사랑, 자유를 찾아 걸어가는 헤드윅과 결코 다르지 않다.

작품은 1인극이지만 ‘1인 35역’을 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샤로테를 인터뷰하는 더그와 그에게 성정체성을 확인시켜준 이모, 그를 감시한 슈타지 요원과 그를 취조하듯 질문을 퍼붓는 기자 등 모든 인물을 배우 혼자서 연기한다. 모노드라마인 데다 복잡한 액자식 구성 탓에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으나 독특한 형식과 탄탄한 대본 덕에 내용 이해가 어렵지 않다. 극단 동 대표인 강량원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고, 남명렬과 지현준이 샤로테로 열연한다. 전석 3만원. (02)708-5001.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13-05-3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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