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감춰진 비극’…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족의 ‘감춰진 비극’…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1-05-31 01:02
업데이트 2021-05-31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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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리뷰] 경기도극단 공연 ‘파묻힌 아이’

무대 위 어둡고 기이한 분위기 객석 휘감아
근친상간서 태어난 아이 옥수수 밭에 묻어
배우들 대사·몸짓에 관객은 잠시도 눈 못 떼
붕괴 직전의 가족 이야기 강렬하게 빚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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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경기도극단의 연극 ‘파묻힌 아이’는 욕망과 폭력으로 얼룩진 한 가족의 모습을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풀어낸다. 윤재웅(사진), 예수정 등 배우들이 뿜어내는 기이한 분위기가 몰입도를 높인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경기도극단의 연극 ‘파묻힌 아이’는 욕망과 폭력으로 얼룩진 한 가족의 모습을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풀어낸다. 윤재웅(사진), 예수정 등 배우들이 뿜어내는 기이한 분위기가 몰입도를 높인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폐허처럼 우중충한 분위기를 풍기는 집이 길게 뻗어 빼곡하게 숲을 이룬 옥수수밭에 둘러싸여 있다. 검은 배경의 무대 뒤편에는 장대 같은 빗줄기도 후두둑 떨어진다. 저마다 다른 높이로 뾰족하게 솟은 창문들이 집 밖과 거실의 경계를 위태롭고 긋고 있다. 망으로 표현한 벽은 집 밖 움직임을 훤히 보여 줘 긴장을 높인다. 무대 위 어둠과 불편함이 내내 객석을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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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경기도극단의 연극 ‘파묻힌 아이’는 욕망과 폭력으로 얼룩진 한 가족의 모습을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풀어낸다. 윤재웅, 예수정(사진 왼쪽) 등 배우들이 뿜어내는 기이한 분위기가 몰입도를 높인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경기도극단의 연극 ‘파묻힌 아이’는 욕망과 폭력으로 얼룩진 한 가족의 모습을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풀어낸다. 윤재웅, 예수정(사진 왼쪽) 등 배우들이 뿜어내는 기이한 분위기가 몰입도를 높인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경기도극단이 지난 27일부터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파묻힌 아이’는 무대만큼 어둡고 불안한 가족들의 이야기다. 몸이 불편해 소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술과 텔레비전이 유일한 낙인 아버지 닷지(손병호 분), 정신이 이상해진 첫째 아들(윤재웅 분), 다리가 불편한 둘째 아들(정다운 분), 그리고 발랄하지만 어딘가 음흉한 어머니(예수정 분). 서로 나누는 대화가 각자 허공에 떠돌듯 어긋나는 이 가족에게 괴이함마저 느껴진다.

작품은 미국 배우이자 극작가인 샘 셰퍼드가 ‘기아계층의 저주’(1976), ‘진짜 서부’(1980) 사이 1979년에 초연한 가족 3부작 중 하나다. 경기도극단은 미국 정식 라이선스로 이 작품을 선보인다. 붕괴 직전의 위태로운 가족의 이야기를 연출가 한태숙 경기도극단 예술감독이 특유의 무게를 더해 강렬하게 빚어냈다.

극 중 어머니 핼리와 첫째 아들 틸든은 과거 충동적으로 관계를 맺었고, 가장인 닷지는 이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옥수수밭에 묻어 버린다. 그리스신화 중 ‘오이디푸스’의 근친상간 내용을 비틀어 인간이길 포기한 채 욕망을 앞세우고 서로를 해치는 가족의 비극적인 시간을 무대에서 풀어냈다. 멈추고 망가져 버린 가족의 시간이 무대 곳곳과 배우들의 대사 마디마다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얽혀 있다.

생명을 묻은 뒤 아무런 씨앗을 심지 않은 밭에서 별안간 옥수수와 당근이 풍년을 이룬 때, 손자라며 찾아오는 빈스(황성연 분)와 그의 연인 셸리(정지영 분)가 이 집에 들어서자 끔찍한 비밀이 서서히 벗겨진다. 퀴퀴한 공기가 가득한 이 공간과 철저히 분리된 듯한 외부인인 셸리는 한시라도 빨리 집을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가족들을 한 명씩 응시하며 추악한 진실을 끄집어낸다. 무대가 주는 음산하고 기이한 분위기에 거리를 두고 싶다가도 인물의 대사와 몸짓을 읽어 내느라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더욱 깊이 무대에 빠져드는 관객을 투영하는 듯하다.

올해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한 이태섭 디자이너의 무대는 극을 더욱 살린다. 아직은 이른 시기에도 옥수수를 줄기째 잔뜩 공수해 배경을 채우고 무대 위에도 던져 놨다. 기형적인 남근을 상징하는 장치다. 무대 위에선 경기도극단 배우들과 합을 맞추며 묵직하게 이끌어 가는 손병호, 예수정의 연기가 객석을 압도한다. 공연은 다음달 6일까지 이어진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2021-05-3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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