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에 젖어 ‘아픈 중년’이여…

위선에 젖어 ‘아픈 중년’이여…

김승훈 기자
입력 2015-09-17 23:18
업데이트 2015-09-18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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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남녀의 민낯 파헤친 소설집 ‘사십사’ 작가 백가흠

스물일곱 살에 등단한 소설가 백가흠(41)이 어느덧 40대 중년이 됐다. 작가의 눈에 비친 40대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허위나 위선에 젖어 내 본래 모습에 대한 기억을 점점 잊어가는 세대인 것 같다. 40대가 되니 그런 점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이런 성찰이 자기 세대의 이야기에 천착하게 했다. 허위와 위선에 가려진 40대 중년 남녀들의 민낯을 파헤쳤다. ‘힌트는 도련님’ 이후 4년 만에 낸 네 번째 소설집 ‘사십사’(四十四·문학과지성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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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접어든 등단 14년차 소설가 백가흠은 “예전엔 젊고 폭력적이고 패악적인 행동도 망설임 없이 일삼는 인물들을 주로 다뤘는데 40대가 되면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완숙해진 것 같다”며 “폭력과 살인만이 잔인한 게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그런 잔인한 것들에 무감각해지는 게 더 잔인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40대에 접어든 등단 14년차 소설가 백가흠은 “예전엔 젊고 폭력적이고 패악적인 행동도 망설임 없이 일삼는 인물들을 주로 다뤘는데 40대가 되면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완숙해진 것 같다”며 “폭력과 살인만이 잔인한 게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그런 잔인한 것들에 무감각해지는 게 더 잔인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소설집엔 2011년부터 써 온 단편 아홉 편이 실렸다. 표제작 ‘사십사’를 비롯해 ‘한 박자 쉬고’, ‘더 송’(The Song), ‘흰 개와 함께하는 아침’, ‘아내의 시는 차차차’, ‘흉몽’, ‘네 친구’, ‘사라진 이웃’, ‘메테오라에서 외치다’ 등이다.

그는 17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허위나 위선에 익숙해져버려 양심을 찾아보기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40대는 이전보다 좀 더 안정적이고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내부에서는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사이에 어떤 균열이 일어나고 있어요. 과거의 상처, 잘못된 행동 등 그 균열이 시작된 지점들을 추적해 봤어요. 주로 10대나 20대 때 겪었던 것들, 자기도 잊으려 했고 잊고 있었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삶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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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송’은 실생활도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도 성공가도로 접어든 사람들의 이면을 파고들었다. “내부에서 삶이 조금씩 깨져가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아무 문제 없다고 자신하며 살던 사람들이 불현듯 삶이 망가졌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이야기예요.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깨달았을 땐 이미 회복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거죠.”

표제작 ‘사십사’와 ‘네 친구’는 40대 여자들의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은 40대에 괜찮은 직업도 가졌고 오래된 친구도 있지만 잘못된 연애의 기억, 불의의 사고로 인한 아픔 때문에 가진 것과 이룬 것에 어울리는 삶을 살지 못한다. “여자들 이야기는 잘 몰라서 그동안 많이 망설였어요. 사회적으로도 성공했고 함께할 벗도 있는데 완성된 삶을 추구하지 못하고 자꾸 깨져버릴 것 같은 여자들의 삶을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한 박자 쉬고’에는 도서관에서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시를 짜깁기해 등단한 뒤 문화센터 ‘시 창작 교실’에서 ‘시 선생’ 대접을 받는 인물, ‘흉몽’에는 유능한 편집자가 됐지만 문청 시절 동지였던 친구 작가를 모함해 곤경에 빠뜨리는 인물이 나온다.

작가는 당초 연작소설집을 꾸리려 했다. ‘더 송’을 첫 작품으로 시작해 아홉 편을 연작으로 묶으려 했다. ‘한 박자 쉬고’, ‘사라진 이웃’, ‘아내의 시는 차차차’, ‘메테오라에서 외치다’ 등 다섯 편까지 연작으로 썼다.

“나머지 네 편은 하나로 묶여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간에 단편소설집으로 바꿨어요. ‘더 송’ 연작으로 시작한 만큼 ‘더 송’에 이번 소설집의 주제의식이 가장 잘 나타나 있어요. 책 제목도 ‘더 송’으로 하려 했는데 ‘사십사’가 40대 이야기를 다룬 이번 작품들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잘 대변하는 것 같아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첫 창작집 ‘귀뚜라미가 온다’에서부터 ‘조대리의 트렁크’, ‘힌트는 도련님’ 등 그동안 펴낸 세 권의 소설집에선 주로 젊고 거친 남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개인의 파국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색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2015-09-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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