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북방서 남하한 ‘기후난민의 후예’

한민족은 북방서 남하한 ‘기후난민의 후예’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24-09-13 00:45
수정 2024-09-13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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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가 쓴 한국인의 기원
극심한 추위 피해 남쪽으로 이주
단일 민족이란 환상에 불과한 것
3개 유역에서 이동하고 섞인 결과
미래 한국인도 ‘기후난민’ 가능성

한국인의 기원
박정재 지음/바다출판사
504쪽/2만 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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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가 들려주는 한국인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다. 거듭 밝히지만 한민족의 기원을 말하는 이가 인류학자나 고고학자가 아니다. 지리학자다. 저자는 기후학, 고유전학, 언어학, 고고학 등 점점이 흩어진 자료들을 통합해 한국인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만든다. 그러니까 대략 6만년 전 아프리카를 탈출한 호모 사피엔스가 한국인이 되는 과정을 여러 학문의 도움을 받아 재구성했다고 보면 틀림없겠다. 그 과정이 도전적이고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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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민족은 추위를 피해 북방에서 한반도로 남하한 기후 난민의 후예”다. 마지막 빙기에서 가장 추웠던 2만 5000년 전, 그리고 현 인류가 사는 홀로세에 속한 8200년 전 북방에 거주하던 수렵 채취인들이 극심한 추위를 피해 대거 남하했다. 이들의 이주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됐다. 예컨대 8200년 전 한반도를 찾은 호모 사피엔스들은 토기문화를, 청동기 저온기에 산둥·랴오둥 등에서 온 집단은 농경문화를 각각 전파했다. 여기에 철기 저온기에 랴오시·랴오둥에서 온 점토대토기 문화 집단, 중세 저온기에 남하한 고조선과 부여의 유민이 섞여 현대 한국인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국인 형성 기후 가설’의 핵심이다.

수만 년 동안 인류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기후변화가 생길 때마다 난민들은 북진과 남진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기원의 사람들이 섞였다. 한반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까 ‘한민족’이란 건 국민 통합을 위한 정치적 구호 속에서나 유효한 것이지 민족의 기원이란 측면에서 보면 애초 말이 되지 않는 논리다. 저자는 “한반도인은 양쯔강·랴오허강·황허강·아무르강 등 4개 유역에서 기원한 사람들이 이동하며 섞인 결과 형성됐다”고 했다. 단일 민족이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한국인의 2100년 시나리오는 어떨까. 산업화 이후 전 세계적으로 섭씨 1.1도가 더 올랐지만 우리나라는 섭씨 1.6도 올라 평균치를 크게 웃돌았다. 우리나라는 중위도에 위치(위도가 높을수록 온난화 효과가 크다)한 데다 빠른 도시화로 열섬 현상이 심하기 때문이다. 아열대 나라가 되더라도 에어컨으로 견디면 된다? 폭염은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온난화가 지속될수록 해수면 상승, 태풍 강화, 전염병 증가, 종 다양성 감소, 미세 먼지 증가 등 수많은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럼 우리는 만주나 연해주로 올라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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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재
박정재


저자는 “미래 한국인들은 고대 조상들처럼 다시 ‘기후 난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국인이 북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인류 전체의 종말 또한 그리 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섬뜩한 경고도 덧붙인다. 올여름 우리를 괴롭힌 폭염이 경고했듯 기후 난민은 지금, 우리 이야기다.
2024-09-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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