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사랑의 집’짓기, 너무너무 훌륭해요

지미 카터 ‘사랑의 집’짓기, 너무너무 훌륭해요

입력 2010-06-02 00:00
업데이트 2010-06-0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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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사람 2

2001년 한여름인 8월 첫 주 인천국제공항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오는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로 붐볐다. 무주택 저소득 가정을 위해 ‘사랑의 집’을 짓는 해비타트의 연례 국제행사 ‘지미카터특별건축사업(JCWP 2001)’에 참가하기 위하여 입국하는 외국인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진 바지 차림으로 개인 소지품이 들어 있는 길쭉한 여행 가방을 들고 부인 로잘린 여사와 함께 그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서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모습도 보였다. 이날부터 일주일 동안 지미 카터 내외는 충남 아산에 짓는 ‘화합의 마을’ 제 14동 102호의 건축에 배속된 자원봉사자로서 누구 못지않게 많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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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저녁 열린 개막행사에 등단한 카터 대통령은 ‘매년 행사 때마다 중요한 부탁을 하나 하는데, 아내와 나는 일하러 왔지 사진 찍으러 오지 않았다’ 며 ‘현장에서 사진 포즈 부탁은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웃음과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 말은 농담이 아님이 그 이튿날 아침부터 증명되기 시작했다.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작업 중 인터뷰나 사진촬영을 엄격히 통제하였기에 언론사 기자들은 불만이 많았다. 당시 같은 현장에 있던 나도 14동 근처를 지날 때마다 카터 대통령의 일하는 모습을 슬금슬금 훔쳐보곤 했는데, 그는 과연 완전히 숙달된 목수였다. 톱질, 망치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재를 옮겨오는 일도 손수 하고 있었다. 그리고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면 작업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 피치 못할 경우의 하나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련한 오찬이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현장에서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야외식탁에서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보안 등의 이유로 결국 온양그랜드 호텔에서 ‘청와대식’으로 준비한 검소한 오찬을 200여 명의 행사참가자들과 함께 들었다. 내가 다시 한 번 탄복한 것은 오찬을 끝내고 현장에 도착하니 같은 장소에서 출발했는데도 카터 대통령은 이미 작업에 몰입한 상태였다. 그는 자기가 작업하는 집의 공사가 계획대로 진도가 나가지 못하는 것을 아주 싫어해서 다른 봉사자들을 자주 독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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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대통령의 고향인 플레인즈(Plains)와 국제해비타트 본부가 있는 아메리쿠스(Americus)는 서로 이웃하는 거리에 있다. 그러나 그가 해비타트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재선 시도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배하고 대통령직을 물러난 이듬해인 1982녀부터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원봉사자로서 연장을 들고 나선 것은 1984년부터이다. 그때부터 매년 최소 일주일은 해비타트 집짓기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로 약속했고 이를 계기로 지미카터특별건축사(Jimmy Carter Work Project:JCWP)이 시작되었다. JCWP는 해마다 미국 본토와 외국을 번갈아가며 카터 대통령 내외의 선도로 1주일 동안 치러지는 대규모 초단기 건축프로젝트이다. 주택문제가 해결되어야 경제, 교육, 건강,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가정이 제대로 유지되고 전체 사회도 번영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저소득 가정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세계적으로 활동을 펼치는 해비타트 운동에 그는 깊이 공감하고 적극 동참키로 한 것이다.

1984년 최초의 JCWP는 뉴욕시에서 실시되었는데, 열아홉 가정이 살고 있는 6층짜리 건물을 개량하는 공사였다(해비타트는 새 집을 짓는 것 외에도 낡은 집을 고치거나 리모델링도 한다). 이때 카터 대통령은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뉴욕에 갔고 잠도 교회당 바닥에서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간이침대에서 잤다. 그 교회 목사님이 교회에 딱 하나 있는 조용한 침실에서 카터 내외가 주무시라고 권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갓 결혼한 부부에게 그 방을 양보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도 특별대우 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집짓기를 하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식판을 들고 줄을 선 다음 자기 차례가 와야 배급을 받곤 했다.

카터 대통령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 집안의 땅콩농장에 있는 대장간에서 농부인 아버지를 도우면서 공구를 다루는 일을 익혔다. 시집을 포함하여 여러 권의 저서를 출판한 글쓰기 및 그림 그리기와 더불어 목공 일은 그의 중요한 취미활동이다. 여러 종류의 가구를 만들어 자손과 친지들에게 선물하거나 자선경매에도 내어놓아 모금을 돕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집짓기 기간에 하루는 현장으로 이동 중에 갑자기 재래시장엘 들리고 싶다고 하여 로잘린 여사와 다정히 손을 잡고 아산의 장터에 들린 적이 있다. 로잘린 여사는 어디서 들었는지 붉은 고추와 숯을 끼운 금줄(남아가 태어났을 때 문간에 걸어 매던 새끼줄)을 사고 싶어 했다. 그러나 구하질 못해 결국 풋고추 3000원 어치를 샀는데, 카터 대통령은 톱 4개 등 집짓는 연장들을 샀다. 목수의 본색이 여실히 들어난 장면이었다.

카터 대통령과 해비타트와의 관계는 망치를 든 ‘목수’로서 만의 자원봉사에 그치지 않는다. 모금활동을 포함하여 집짓기 자원을 확보하는 데에도 적극 기여했다. 1986년 국제해비타트 창설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모금운동을 전개할 때, 해비타트 이사회에서는 해비타트 설립자 밀라드 풀러 총재가 제안한 1천만 달러 모금목표가 너무 높다는 주장이 나와 옥신각신했다. 그러자 카터 대통령이 1천만 달러 목표를 밀고 나가자고 했다. 5백만 달러 정도로 목표를 낮추면 실제로는 3,4백만 달러 정도밖에 달성하지 못할 수 있지만, 오히려 적극적으로 목표를 1천억 달러로 높여 잡고 최선을 다하면 1천만 달러 전액을 달성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여 결국 그렇게 정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 ‘1천만 달러 모금’ 위원장직을 맡아 모금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결과는 목표보다 2백만 달러나 초과한 1천 2백만 달러였다! 그는 최근까지도 해비타트 운영에 중대한 문제가 생길 때면 선의의 감찰 또는 조언자로서, 때로는 중재자로서 어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오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지미 카터는 ‘훌륭한 전직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대통령이 되었던 사람’이라고들 말한다. 사실 그는 대통령 재임기간보다 퇴임한 후에 국내외적으로 더욱 더 많은 관심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물론 해비타트를 통한 집짓기 자원봉사 활동이 일반대중들에게는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모습이다. 그러나 재임시에 있었던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수상과의 회담 주선을 비롯하여, 퇴임후 김대중 대통령 구명운동, 북한 핵 위기 해소를 위한 김일성 주석 면담, 우간다와 수단의 평화협정 중재, 그리고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노사분쟁 중재에 이르기까지 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은 광범위하고 꾸준하다. 이런 활동들은 누가 시켜서 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고 인류를 위한 문자 그대로의 자원봉사였다. 2002년 그에게 수여된 노벨평화상의 선정 사유처럼 그는 ‘평생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에 헌신’함으로써 최고의 자원봉사자가 된 것이다. 이렇게 옳은 생각, 좋은 일을 해온 그를 세상은 존경하고 있다.

서두에서 얘기한 2001년도 ‘지미카터특별건축사업’에 참가하여 아주 작은 역할이나마 수행했던 나의 서가에는 가끔 혼자만 꺼내어 보며 회상에 잠기는 책이 한 권 있다. 카터 대통령이 지은 《항상 헤아리며》라는 제목의 시집이다. 겉표지를 넘기면 간지에 “Best wishes to Kwon I-yong”이라는 단아한 펜글씨와 그 아래 서명과 함께 날짜가 적혀 있다. 집짓기 행사가 끝날 무렵 받은 그 시집은 그 여름의 모든 더위와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 보내는 기쁨을 주었었다. 요즘도 그 시집을 바라볼 때 마다 나는 소망한다. “나도 옳은 생각으로 좋은 일을 하기 위해 ‘항상 헤아리며’ 나머지 삶을 성실하고 멋있게 살아야지. 가끔은, 그 여름에 목격했던 밝고 빛나던 미소를 회상하며… ”

글·그림_ 권이영 시인, 한국해비타트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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