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 그의 꿈① | 병원을 치료하는 의사] 아픈 병원은 내게로 오시오!

[그의 삶 그의 꿈① | 병원을 치료하는 의사] 아픈 병원은 내게로 오시오!

입력 2011-08-21 00:00
업데이트 2011-08-2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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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바람을 따라가는

고단한 길 위에

우리가 집 하나를 지어 놓으면

새들이 와서 살아주겠지

…중략…

세상 모든 근심을

우리가 다 감당할 순 없지만

병들어 서러운 마음만은

없게 하리라.


지난 7월 5일 오후 5시 명지병원 신관 7층 강당에서는 계속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명지병원의 병원가인 <길과 집>은 노혜경 시인의 시에 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쓴 곡. 지정곡 <길과 집>에 자유곡 하나를 선택하여 명지병원의 전 직원이 참가하는 합창경연대회가 열린 것이다. 이름하여 ‘슈퍼스타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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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3개 팀이 6월 21일부터 3일간 예선전을 벌인 끝에 이날 본선에 오른 팀은 모두 9개팀. 총상금 500만 원을 놓고 드디어 경연이 펼쳐졌다.

여기가 병원 맞아?

강당 안팎은 여느 방송국 스튜디오를 방불케 하는 시끌벅적한 분위기다. 다음 차례를 준비하면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모습, 근무교대해서 막 뛰어오는 사람, 한쪽에선 행운권 추첨에 당첨되어 환호하고, 응원열기까지 겹쳐 장내는 후끈 달아올랐다.

병원가도 있는 그대로 부르는 것이 아니다. 뽕짝 스타일로 편곡하여 빠르게 부르는 팀, 아카펠라로 부르는 팀, 돌림노래로 하는 팀 등 색깔이 분명하다. 자유곡에 이르러선 훨씬 개성이 넘치는 무대가 펼쳐진다. 건강검진사업팀은 브레이크댄스로 관중들을 경악케 했고 내과계중환자실 팀은 사물놀이를 선보였다. 신경과 팀은 CM송 메들리를 해보였는데 ‘간 때문이야’를 패러디한 ‘뇌 때문이야’로 인기를 끌었다.

개그맨 김준호의 사회로 진행된 ‘슈퍼스타 M’은 명지병원의 전 직원들이 어우러진 한바탕 축제의 장이었다. 경연대회 중간에는 명지병원 이왕준 이사장과 간호사·의사·직원들로 구성된 ‘M공감앙상블’의 연주가 있어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이날 대상은 내과계중환자실 팀에 돌아갔는데 상금 300만 원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은 방송국 오디션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한 것 이상이었다. 이왕준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내년에는 상금을 더 올리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자아냈다.

심사를 맡은 병원가의 작곡자 이건용 교수는 “연습기간도 얼마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내가 작곡한 곡 중에서 이 곡이 제일 많이 불린 것 같다. 작곡자로서 흐뭇하다”고 했다.

경연대회가 끝난 후 우승팀을 주축으로 이왕준 이사장과 직원들이 얼싸안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떠오른 생각 하나. ‘여기가 병원 맞아?’

한국판 패치 아담스

명지병원 이왕준 이사장을 인터뷰하러 가면서 영화 <패치 아담스>가 생각났다. 환자의 정신적인 상처까지 보듬어주려 했던 의사,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장난기로 끊임없이 환자와 소통하고자 했던 패치 아담스와 그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패치 아담스> 시사회를 우리 병원(인천사랑병원) 로비에서 했어요. 1999년엔가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영화의 컨셉트와 우리 병원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 당시에 병원 로비에서 전국노래자랑 식으로 환자·의사·간호사 지역주민이 참가하는 노래자랑대회를 했었거든요. 그게 재미있었던지 9시 뉴스에도 나오고 그랬지요.”

1997년 외과전문의를 취득했지만 그는 갈 곳이 없었다. 취직하기로 한 병원은 IMF 금융위기로 문을 닫았고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한 경력으로 다른 병원에서는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종합병원에서 아르바이트 의사로 있었는데 병원 로비에 그랜드피아노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즈음 주변에 망한 병원이 있는데 인수할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그 병원이 지금의 인천사랑병원이다. 돈도 없어서 은행융자를 받고 간신히 개업을 했다. 병원 건물에다 가로 20미터 세로 10미터의 커다란 플래카드만 하나 붙이고 시작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세상 모든 근심을 우리가 다 감당할 순 없지만 병들어 서러운 마음만은 없게 하리라.”

지금도 이 글을 보고 감동해서 병원을 찾았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는 개업하고 100일 동안 응급실 당직을 서면서 직원들 모두를 면담했다. 그리고 환자제일주의를 부르짖었다. 병원 내 의사소통을 위해 소식지를 만들고 한 달에 한 번씩 노래자랑대회를 열었다. 방송국 피디로 있는 선배를 통해 초대가수를 섭외하고 근처 단란주점에서 술 취한 손님들 반주를 해주는 아저씨를 반주자로 모셔왔다. 나중에 이 아저씨는 자원봉사를 하겠다며 돈도 받지 않고 다른 동료까지 한 사람 더 데려왔다.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어 합니다. 출연진 중에는 식당 아줌마, 목발 짚고 절룩거리던 환자, 링겔 꽂은 채 노래하는 사람 등 다양합니다. 한번은 척추 수술한 사람이 흔들고 하니까 담당의사가 기겁을 한 적도 있고요. 사람들이 며칠 동안 그 얘기만 합니다.”

처음에 130 병상이던 인천사랑병원은 현재 400 병상에 연 매출 450억 원대의 번듯한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슈퍼스타 M>을 통해 직원들이 하나가 되다

2009년 7월, 그는 명지병원을 인수했다. 다들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했다. 경영난을 해결하지 못하면 인천사랑병원까지 위험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인천사랑병원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경험이 있었다. 소아전용 응급실은 놀이동산처럼 꾸미고, 정신과 입원 병동은 통유리의 녹색 정원으로 만들었다. 암 환자가 방사선 치료실에 들어서면 환자가 좋아하는 색깔의 조명으로 바뀌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매일 아침 7시에 회의를 열고 개선할 점이 보이면 즉시 고쳤다.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때에는 발 빠르게 신종플루 전담진료 센터를 차리고, 24시간 진료를 시행했다. 병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 명지병원을 인수했을 때 전 직원이 모이는 것은 일 년에 한 번 신년인사를 할 때뿐이었다. 안 되겠다 해서 전직원 면담을 실시하고 혁신과 헌신을 외쳤다. 올해 초부터 병원가를 부르게 했는데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좋은 방안이 없을까 고심하던 차에 합창대회를 개최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조건은 하나, 악보 없이 가사를 다 외워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약간 강제성을 띠었지만 예선전을 치르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슈퍼스타 M’을 통해서 직원들은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동안 힘들게 일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합니다. 강렬한 희열을 공유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과는 근본적으로 연대감이 다릅니다. 난 이것을 꿈의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올해 3월 개원한 제천명지병원도 100일 만에 1일 외래환자 430명, 병상가동률 96%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지역에 정착했다. 국내 최초로 시범 실시되는 EMR(전자의무기록)시스템과 테블릿 PC, 스마트폰을 활용한 환자 중심의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를 실시하여 명지병원의 ‘환자 제일주의’ 정신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응급의료센터를 통한 24시간 365일 진료체제를 구축한 것도 주효했다.

개원식은 개그맨 이홍렬·송은이가 사회를 보고 가수 현숙이 초대가수로 노래를 불렀는데 지역주민 2,000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개원식 전단을 나이트클럽 전단같이 만들어 초대가수와 사회자를 크게 전면으로 세우고 개원식은 밑에 조그맣게 썼다. 이런 것도 이왕준 이사장 아니면 생각하지 못할 발상의 전환이 아닌가 생각했다.

“과거에는 의료인이 독점적인 권한과 지식을 가지고 우위에 서서 치료자의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의료의 성격이 변했습니다. 본질적으로 의사는 환자와 같이 인생을 동행하는 조력자이자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다소 심각할 수도 있는 얘기들을 아주 재미있고 거침없이 걸걸한 목소리로 얘기해 준 이 의사에게 대한민국이 치료받고 싶어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글_ 김창일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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