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가족] 어머, 난 동생이에요

[붕어빵 가족] 어머, 난 동생이에요

입력 2011-02-13 00:00
업데이트 2011-02-1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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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대략 50년 전 이야기다.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니 이웃에 사는 이모와 머리에 참기름을 이고 이집 저집 팔러 다니던 아줌마가 이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연인즉 우리 집에 놀러 온 이모는 아무도 없기에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얼마 후 누군가 흔들어 일어나 보니 참기름 장수 아줌마가 외상으로 준 기름 값을 달라고 하더란다. 언니 집에 놀러 온 동생이라고 했지만, 아줌마는 어머니와 너무도 닮은 이모의 말을 믿지 않고 계속 돈을 내라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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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때맞춰 들어간 나와 형이 엄마가 아닌 이모라고 보증을 서는 바람에 웃으며 그 순간은 마무리됐지만, 그래도 미심쩍었던지 아줌마는 집을 나서면서도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니는 이모가 집으로 가고 한참 후에 돌아오셨고, 형과 나는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다시 배꼽을 잡고 웃었다.

바로 다음 날에도 사건은 이어졌다. 나와 형, 어머니 모두가 있을 때 마침 그 기름 장수 아줌마가 왔다. 어머니 얼굴을 한번 유심히 확인한 뒤 외상값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머니는 정색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 아줌마는 어제도 그러시더니 오늘도 그러시네. 언니네 집에 다시 놀러 왔단 말이에요!” 형과 나는 깜짝 놀랐다. 어머니의 코미디가 너무 어이가 없어 크게 웃었고, 어머니도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으셨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우리가 자신의 실수 때문에 웃는 줄 착각하고,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가셨다. 어머니는 “돈이 없는 걸 어떡하니. 호호호”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며칠 후에 다시 기름 장수 아줌마를 천연덕스럽게 맞이한 어머니는 외상값을 갚은 뒤 “식사나 같이 하자”며 돌아서는 아줌마를 부르셨고, 큰 밥통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넣은 비빔밥으로 상을 차리셨다. “아니 어떻게 동상과 그리 똑같이 생겼노?” 묻는 아줌마에게 어머니는 두 번째는 동생이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고 자수를 하셨고,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벌써 10여 년이 흘렀지만 어머니의 재치와 유머,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웃과 음식 나누기를 즐겨 하셨던 후덕한 인정이 아직도 많이 그립다.

우병선(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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