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릴라 릴라’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릴라 릴라’

입력 2011-09-16 00:00
업데이트 2011-09-1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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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웨이터로 일하는 다비드(다니엘 브륄·오른쪽)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평범한 남자다. 손님으로 종종 들르는 마리(한나 헤르츠스프룽·왼쪽)를 남몰래 사랑하지만, 그녀는 그의 존재조차 모른다. 어느 날 벼룩시장에서 작은 서랍장을 구입한 다비드는 그 속에서 누군가가 오래전 쓴 원고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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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인 마리의 관심을 얻고 싶은 마음에 그는 그 작품을 자신의 소설인 것처럼 꾸민다. 사건은, 소설을 읽고 감동받은 그녀가 출판사에 몰래 연락하면서 벌어진다. ‘릴라 릴라’라는 제목의 1950년대식 사랑 이야기는 출판계에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다비드의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연초에 개봉한 우디 앨런의 ‘환상의 그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작에 목마른 소설가 로이는 사고를 당한 친구의 습작을 가로챈다. 얼마 후 그는 친구가 의식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도덕에 대해 말하는 듯하지만, 앨런은 어떤 섭리를 빌려 삶의 짓궂은 미스터리를 전한다.

같은 상황에 직면한 다비드가 죄의식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릴라 릴라’의 주제는 ‘환상의 그대’의 그것과 다르다. 로이가 남의 창작물을 훔친 소설가지만, 다비드는 타인의 작품을 통해 자기 삶을 바라보게 된 보통 사람이다. 로이에겐 소설이 절실한 목적이지만, 다비드는 사랑이란 목적을 위해 소설의 도움을 구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릴라 릴라’는 다비드의 죄를 심판하거나 다비드의 내적 혼란을 전면화하는 쪽으로 가지 않는다. 대신 소박한 남자를 둘러싼 예술 시장의 허영을 풍자한다. 다비드라는 인간과 소설가로서의 다비드 가운데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모르는 마리가 허영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짝사랑을 거들떠보지 않던 그녀는 그가 한 거짓말의 덫에 매혹당한다.

극 중 소설은 절박한 사랑 끝에서 목숨을 잃은 남자의 실제 이야기인데, 독자나 평단은 실존 인물과 그가 겪은 고통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 이야기를 작품에 담은 작가에게만 관심과 애정을 표한다. 그럴듯하게 표현된 허상이 진짜 존재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리는 것이다. 원작소설까지 포함하면 몇 겹 소설의 벽이 ‘릴라 릴라’의 안팎을 두르고 있다. 관객이 보는 것은 마르틴 주터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고, 극 중 소설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다비드와 마리의 사랑과 대구를 이루며, 영화 전체를 품는 숨겨진 소설 한 편이 주터의 자전적 소설과 다시 한 번 연결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다비드의 내레이션이다. 크게 원을 구성하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끄는 내레이션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비교될 수밖에 없는 린 램지의 ‘모번 켈러’와 이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

‘모번 켈러’에서 모번은 자살한 남자친구의 소설에 자기 이름을 새겨 출판사에 보낸다. ‘릴라 릴라’는 정체성을 찾는 한 인간의 이야기에 인물의 목소리를 더한다. 타인의 시선 바깥에 존재하던 다비드는 목소리를 갖게 되면서 사회적 존재로 변신한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은 남의 이야기만 들으며 산다. 자기 이야기에 아무도 관심 없을 거로 생각하고 자신을 표현할 방법을 잊어버린 채 산다. 글은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릴라 릴라’는 모든 인간이 각자 하나의 목소리를 갖고 있음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22일 개봉.

영화평론가

2011-09-1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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