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사고 후쿠시마서 15년간 한국문화 전도사랍니다”

“원전사고 후쿠시마서 15년간 한국문화 전도사랍니다”

입력 2015-08-19 09:28
업데이트 2015-08-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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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실 일본 후쿠칸네트 이사장... 한국어, 김치 강좌

”후쿠시마(福島)는 일본에서 시골인데도 한국을 알고 싶어하고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서 ‘한국 알리기’를 15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정치나 외교의 갈등이 있지만 순수한 민간 교류가 늘어날수록 양국 관계는 더 밝아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한·일간 우호 친선 확대에 앞장서온 재일 시민단체인 후쿠칸네트의 정현실(54) 이사장은 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양국이 갈등을 풀고 진정한 이웃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문화 교류의 확대”라고 운을 뗐다.

후쿠시마와 한국의 머리글자를 딴 일본어 발음인 후쿠칸네트는 후쿠시마현을 중심으로 한국의 언어·문화·경제·역사 등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양국 시민 단체 간 교류 활동을 전개하는 비영리법인(NPO)이다.

정 이사장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한 청소년 상호 교류의 하나로 후쿠시마현 청소년의 방한 준비를 위해 지난주 고국을 찾았다.

지난 7월 29일부터 9박10일 일정으로 한국 청소년 166명이 도쿄(東京), 닛코(日光), 후쿠시마 등을 방문했고 오는 9월 18일부터 24일까지는 후쿠시마현 청소년이 서울과 전주에서 청소년 교류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후쿠시마에서 ‘한국 전도사’로 불리는 그는 “31년째 일본에서 살아보니 대부분의 차별은 인종적·민족적 증오보다는 상대를 모르는 무지에서 시작되더라”면서 “서로 잘 아는 게 중요하다 싶어서 단체 창립이래 현지인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김치 등 한식 강좌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1984년 일본으로 유학간 정 이사장은 와세다대에서 일본 고대문학을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 한·일 고대문학 비교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요코하마국립대와 동경외국어대에서 한국 문화와 관련한 강의를 하며 일본 외무성의 한국어 통역으로도 활동했다.

일본 현지인에게 제대로 된 한국어를 가르쳐보자며 1997년에 도쿄외국어대 대학원에서 언어학으로 한국어를 전공했다.

후쿠시마와 인연을 맺은 건 지난 2000년. 일본인 남편이 후쿠시마대에서 교편을 잡으면서부터다. 그 역시 전공을 살려서 후쿠시마대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의 이해 등을 강의해왔다.

후쿠시마로 이사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후쿠칸네트의 설립이다. 당시 그는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는 주변의 요청을 받아들여 후구시마현 국제교류협회 사무실을 빌려 주 1회로 한국어 강좌를 시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금방 수강생이 늘었고, 분반까지 해 주 2회로 편성했다. 80명으로 불어나 매일 강의를 해야 했다.

그는 직업적으로 아무 연관이 없는 일반인이 한국어를 배우려고 찾아오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는 한류 드라마 열풍이 불기도 전이었다.

하루는 수강생에게 담근 김치를 선물로 돌렸는데 폭발적 반응이 돌아왔다.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문의가 쇄도한 것. 한국어도 가르치고 김치 강좌도 열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며 후쿠칸네트를 발족했다.

이 단체는 지금까지 1만여 명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가 가르친 일본인 제자들이 선생이 돼 다른 문화센터나 중·고교에서 한국어 강사나 한식요리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지금도 김치 강좌는 매년 1천여 명이 등록할 정도로 인기다.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방문 투어도 해마다 열고 있다.

단체 이름이 알려지면서 주일 도쿄한국문화원과 연계해 ‘한국어 말하기 대회’, ‘K-팝 경연대회’, 판소리 등 전통문화 공연 등을 개최하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단체 행사와 강좌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자기네보다 잘사는 나라도 아닌 한국에 대해 왜 이리 관심이 많은지 궁금했다”며 “15년째 교류 사업을 추진해보니 후쿠시마는 시골이라 사람들이 유달리 ‘정’이 많고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 등 양국이 서로 닮은 게 많아서 친근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폭발 사고의 영향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어요. 지진과 원전사고의 대재앙을 겪으면서 안전의식이 높아지고 건강을 무엇보다 중시하게 됐죠. 모든 음식재료에 대해 이중 삼중으로 검사하고 집집이 방사능 측정기를 갖추고 있다 보니 역설적으로 가장 안전한 먹을거리가 공급되는 곳이 후쿠시마입니다.”

그는 마이니치(每日) 신문에 8년간 한국 문화 소개 코너를 연재하는 동시에 각종 잡지와 신문에 기고를 하고 있다. 일본어로 ‘시골 생활하는 한국인’, ‘생활 속의 일한(日韓) 교차점’이라는 에세이집도 발간했다.

’민화로 보는 한국’, ‘쉽게 배우는 한국어’, ‘한국인은 안녕하세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등의 저서도 냈다.

”이번 청소년 상호 교류 행사로 후쿠시마를 방문한 학생들이 폐회식 때 친구가 된 일본인 청소년들과의 석별을 아쉬워하며 끌어안고 울기도 했습니다. 양국 청소년들이 아무런 편견 없이 우정을 나누는 걸 보면서 양국의 장래는 밝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교류를 통해서 양국이 조금 더 가까워지는데 후쿠칸네트는 앞으로도 힘을 보탤 겁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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