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공공외교다] “21세기는 소프트파워… ‘열린 소통’으로 公衆을 홀려라”

[이제는 공공외교다] “21세기는 소프트파워… ‘열린 소통’으로 公衆을 홀려라”

입력 2011-09-05 00:00
업데이트 2011-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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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6일 당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미국 캔자스 주립대학 연설에서 국방 분야가 아니라 국무부의 예산증액 필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군사적 성공은 승리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라면서 “알카에다가 온라인에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미국보다 더 잘 전달한다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그 원인으로 “근시안적 조치” 때문에 소프트파워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게이츠 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국제 시민사회의 ‘이해와 공감’을 얻으려는 국가 활동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방적 선전인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쌍방향 소통을 특징으로 하는 공공외교는 특히 강대국에 둘러싸여 틈새외교가 절실한 한국에게 절실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 좌담을 통해 공공외교의 중요성과 바람직한 방향을 짚어 봤다.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지난달 16일 서울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진행된 좌담에는 신낙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태환 한국국제교류재단 공공외교사업부장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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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외교의 바람직한 방향을 주제로 지난달 16일 서울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열린 전문가 좌담에서 참석자들이 김동률(가운데) 서강대 교수의 사회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 교수부터 시계방향으로 신낙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김태환 한국국제교류재단 공공외교사업부장, 김상배 서울대 교수, 김성해 대구대 교수.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공공외교의 바람직한 방향을 주제로 지난달 16일 서울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열린 전문가 좌담에서 참석자들이 김동률(가운데) 서강대 교수의 사회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 교수부터 시계방향으로 신낙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김태환 한국국제교류재단 공공외교사업부장, 김상배 서울대 교수, 김성해 대구대 교수.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김동률 최근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공공외교에 대한 토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먼저 왜 지금 시점에서 공공외교를 얘기해야 하는지 토론해 보자.

●왜 공공외교인가

김성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정치·경제적 개방을 통해 한국은 국제금융자본과 국제여론에 그대로 노출됐다. 한국 혼자만 잘해서는 국익을 달성할 수 없게 됐다. 국가이익 자체도 다양해지고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아랍 민주화에서 보듯 개별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스스로 연결망(네트워크)을 만들며 영향력을 키우는 공중(公衆)의 마음을 얻는 외교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공공외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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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낙균
세계가 좁아지고 있다. 이름도 잘 모르는 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국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외교 환경도 바뀌고 있다. 버락 오마바 미국 행정부가 스마트파워를 천명하고 중국이 공자학원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는 것 모두 군사력뿐 아니라 연성권력(소프트파워)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일할 당시 프랑스 문화평론가 기 소르망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이 그동안 가격경쟁을 했지만 문화를 중시하지 않았다.”면서 “이제는 문화다.”라고 강조했다. 굉장히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한류 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가 있다. 이명박 정부도 이 점을 인식해 국가브랜드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회의적이다.

김상배 왜 지금 공공외교인가.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1970년대 국제정치학은 전쟁과 평화의 문제였다. 외환위기 이후엔 경제 문제가 국제정치학의 중심이 됐다. 요즘엔 소프트파워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소프트파워는 세계를 운영하려는 미국의 관심을 반영한 개념이다. 그럴듯하면서도 별 것 없어 보이기도 하고 심오해 보이기도 한다. 굉장히 매력 있는 개념이다. 예전엔 외무고시 합격자들 사이에 북미국이 최고 인기 분야였고, 문화외교·공공외교·국제개발협력 분야는 한직으로 통했다. 요즘은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전통적인 부국강병, 즉 하드파워 기준으로 동북아시아를 본다면 한국은 북한과 함께 꼴찌를 면할 수 없다. 하지만 소프트파워를 기준으로 한 국제정치 무대에선 막연하게라도 희망이 보인다. 최근의 한류 확산이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그런 것들이 한국에서 공공외교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밑바탕이 되지 않나 싶다.

김태환 9·11 사태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통해 초강대국인 미국조차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으론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럼 하드파워 말고 무엇을 주목해야 할까. 비약적인 기술발전을 통해 소통의 양상이 달라지면서 이제는 일방적인 홍보나 캠페인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결국 열린 소통을 필요로 하는 시대의 흐름이 ‘새로운 공공외교’를 요구하고 있다.

●21세기 공공외교 어떻게

김동률 참가자 모두 공공외교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렇다면 공공외교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김태환 전통적 외교는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했다. 20세기 공공외교는 상대국 시민을 직접 대상으로 한다. 21세기 신(新)공공외교는 여기에 더해 대칭적이고 개방적인 소통 방식을 강조한다. 자연자원이나 광대한 영토, 인적자원 등을 원자재로 보고 원자재를 가공한 결과물을 소프트파워라고 생각해 보자. 가령 한국과 중국은 원자재만 놓고 보면 상대가 안 되지만 원자재를 가공해서 외국 대중에게 내놓는 상품으로 경쟁한다면 한국이 충분히 해볼만하다. 그것이 공공외교를 전개하는 핵심이라고 본다.

김성해 공공외교에서 ‘공공’(公共)의 맞은 편에는 국가 혹은 사적 영역이 있다. 공공이란 말 자체는 민주주의를 책임지는 구성원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공중(公衆)을 대상으로 하고 그들에게 호소하고 설득하는 모든 것을 공공외교라고 할 수 있다. 전략커뮤니케이션, 오픈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지만 굳이 외교란 용어를 쓰는 건 여전히 국제사회가 국가끼리 경쟁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개입해야 할 영역, 국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김상배 공공외교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의미심장하다. 첫 글자 ‘공’(公)은 공공성을 표현한 것이다. 공공외교를 시장에게 맡겨 놓으면 사익추구밖에 안 된다. 거기서 중심을 잡아 주는 게 바로 공공성이다. 전통적으로 베일에 가린 비밀 영역이었던 외교를 공적 영역으로 꺼내 놓고 공개적으로 한다는 속뜻도 담고 있다. 두 번째 ‘함께 공(共)’은 외교부뿐 아니라 다양한 민간 영역도 함께 참여하는 것이 공공외교라는 점을 함축한다.

공공외교에서 외교부가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외교부에서는 정무외교와 통상외교가 양대 축이다. 문화외교국에선 공공외교도 한 축이 돼야 한다고 하는데 공공외교가 정무·통상과 어깨를 겨누겠다고 하면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 공공외교는 외교의 새로운 모습을 가리키는 전체 상(像)이다. 공공외교를 전체적인 외교의 바탕에 깔고 그 위에서 구체적으로 정무와 통상 혹은 좁은 의미의 문화외교가 필요하다.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신낙균 공공외교에서는 정부와 민간 모두 주체가 될 수 있고 대상도 일반 국민으로 확대할 수 있다. 때문에 외교부에서 문화외교를 정무·통상과 함께 3대 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알맹이는 하나도 없다. 해외 문화행사를 주선하는 게 전부다. 그런 문제점을 제기하니까 국제교류재단에 공공외교포럼을 만들더라. 하지만 포럼 자체는 아무런 집행력이 없다.

김상배 문제점은 방법론과 연결돼 있다. 무엇보다 예쁜 척 좀 그만해야 한다. 현 정부는 국가브랜드도 그렇고 본바탕은 신경 안 쓰고 화장 잘하는 법만 얘기한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건 보이지 않는 영역인 문화를 자꾸 보이는 잣대로 재단하려 한다는 점이다. 연기나 노래에 등수를 매기려 드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소프트파워 지수까지 나왔다. 세 번째로 꼭 단일한 주체나 조직이 아니더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공공외교를 전체적으로 조율하기 위한 틀이 필요하다.

김성해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가 어떻게 하면 잘 살아남고, 외국인의 이해와 호감을 얻을 수 있을까. 사회생활을 예로 들면 단기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만 하려 들면 장기적으론 신뢰를 잃는다. 공공외교도 마찬가지다. 존중받고 덕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한국 정부도 장기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국의 매력과 국익을 추구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아쉬운 게 많다. 한민족의 우수성을 열심히 설파하는데 이것이 자칫 국제사회에 대한 몰이해와 주변 민족에 대한 멸시로 나타난다. 최근 일본 등에서 나타나는 역풍은 필연적으로 예견돼 있었다. 국가브랜드를 강조하면서도 결국 수출을 많이 해서 달러를 많이 벌려고만 하니까 ‘천박한 장사치’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생긴다.

김태환 한때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표어가 있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보편적인 가치, 한국을 넘어서는 가치 안에 한국적인 걸 숨기듯이 담아 나가는 일이 시급하다. 너무 한국적인 걸 내세우는 건 편협한 민족주의로 비칠 수 있다.

신낙균 세계와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용광로에 집어넣는 방식으로만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강조하는 것보다 개체가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모자이크식으로 가야 좋지 않을까 싶다.

●공공외교 실천 전략은

김동률 공공외교를 위해 생각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전략은 무엇이 있을까. 사견으로는 정부가 공공외교를 좌지우지하는 건 반대한다. 아울러 현 정부가 지나친 조급증과 강박감에서 벗어나라는 고언을 해 주고 싶다.

신낙균 공공외교 추진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현재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외교부와 문화부, 지방자치단체가 각자 따로 하니까 부처 간 갈등만 생기고 효과는 떨어진다. 우리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특히 공공외교에서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고 체계성과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김태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한다. 공공외교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시민단체가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게 우리 정부의 현실이다. 국제교류재단은 공공외교와 관련 있는 시민단체를 연결하는 웹커뮤니티를 10월에 개통하려고 한다. 영역별·쟁점별로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고 상호 간 정보교류만 해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김성해 미디어를 활용한 공공외교를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뉴미디어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나 중국, 러시아 등은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24시간 영어채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뉴미디어 시대에 역행하는 듯 보이지만 정보량이 많아질수록 맥락을 제대로 짚어 줄 수 있는 믿을 만한 매체가 중요해진다. 언론이 위기라는 한국에서조차 많은 정보의 출처는 여전히 전통적 매체다. 국제 사회에 한국의 의견을 정확하고 품격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가칭 ‘코리아24’ 같은 수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행 아리랑국제방송과 KBS월드를 창조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신낙균 외교관 충원 제도가 외무고시에서 외교 아카데미로 바뀌게 된다. 공공외교에 대한 커리큘럼을 꼭 넣으라고 요구했다. 공공외교 발전을 위해서는 외교부가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외교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는 외교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정리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2011-09-0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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